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28일 방송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죽 한 그릇, 따뜻한 위로를 건네다” 편으로 꾸며진다. 

밥보다 ‘죽’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아프고 힘들 때, 지치고 고단한 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죽’ 가난했던 시절, 부족한 끼니를 채워주었던 고마운 한 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만들 수 있는 맛과 영양을 오롯이 담은 마음의 성찬! 한해의 끝자락,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를 담은 ‘죽 한 그릇’을 만난다.

시린 세월을 따뜻하게 품다 – 속초 해녀 어머니의 ‘섭죽’과 ‘전복죽’

태풍주의보에 발이 묶인 속초 동명항. 비바람과 거센 파도에 휩싸인 바다를 바라보며 애를 태우는 진숙자 씨(78)는 40년 넘게 물질을 하며 살아온 해녀다.

동명항에만 스무 명이 넘던 해녀 중 남은 해녀는 3명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5남매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질하랴, 장사하랴. 한시도 쉴 틈이 없었지만, 바다가 있어 자식들 키우며 먹고 살 수 있었던 진숙자 씨는 힘들어도 바다에만 나오면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며 다시 태어나도 해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겨울이면 자연산 홍합인 ‘섭’과 자연산 전복에 멍게 해삼까지. 바다가 내어준 것들이 차가운 바다를 누비며 사는 해녀에겐 최고의 복덩이다. 닭 육수로 맛을 더하고 고추장으로 얼큰하게 끓인 ‘섭죽’과 내장을 풀어 넣고 끓인 감칠맛 가득 담긴 ‘전복죽’, 전복에 멍게, 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시원한 물회까지, 해녀 어머니의 시리고 고단한 세월을 따뜻하게 품어준 죽 한 그릇을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 - 매일 죽 쑤는 여자의 ‘소고기죽’과 ‘시래기죽’

아흔일곱 어머니의 하얀 머리칼을 직접 잘라주며 사는 김정해(59) 씨는 ‘매일 죽 쑤는 여자’다. 거동이 불편한 데다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은 어머니에게 죽은 먹기도 좋고 소화도 잘되어 좋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 어머니가 선물한 30년 된 칼을 아직도 사용 중이라는 정해 씨. 고기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고기를 갈고 온갖 채소들을 다져 넣어 ‘소고기채소죽’을 솜씨 좋게 쑤어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요리에 관심도, 솜씨도 없던 그녀가 매일 죽을 쑤게 된 건 1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서였다.

함께 목회 활동과 봉사를 하며 열심히 살던 남편이 급성 혈액암 선고를 받았고, 밥을 먹을 수 없는 남편을 위해 인터넷을 찾아가며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던 ‘시래기죽’을 쑤어 건넸을 때 환하게 웃으며 반기던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매일 정성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죽을 쑤며 “오늘도 죽을 준비했어?”라 묻던 남편의 물음을 자신에게 하며 살고 있다는 정해 씨. 그녀에게 죽은 정성을 다한 간절한 마음이고, 따뜻한 위로다.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우다 – 남해 ‘빼때기죽’과 ‘별미죽’

경남 남해의 한 재래시장. 죽집 메뉴판에 적힌 독특한 이름의 죽이 눈길을 끈다. 바로 초상죽. 남해에서는 아직도 초상을 치르는 유족과 조문객들을 위해 ‘콩죽’과 ‘팥죽’을 주는 전통이 남아있다. 죽은 먹기 쉽고 소화도 잘되는 데다 영양도 풍부해 초상을 치르는 이들에게 제격인 음식일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초상죽’이라는 독특한 죽 문화가 전해오는 남해에서는 다양한 죽 음식이 발달했다. 73년 남해대교로 육지와 연결되기 전까지 섬이었던 남해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고, 부족한 곡식을 이용해 여럿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죽’ 문화가 발달했다.

산비탈 돌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재배했던 시절, 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린 빼때기에 물만 부어 끓인 ‘빼때기죽’은 배고픔을 달래주던 한 끼였다.

가난의 상징이었던 죽이 이젠 별미와 건강식으로 주목받는 시대, 찬바람 맞으며 달고 향긋하게 자란 시금치와 굴, 문어로 맛을 더한 ‘시금치해물죽’, 장어뼈와 머리로 진하게 육수를 내고, 장어살과 마늘 등 귀한 재료를 넣어 만든 ‘장어보양죽’에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하는 ‘달비김치’까지, 남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채워준 죽 밥상을 만난다.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여수 은적사 동지팥죽 쑤는 날, 새해 소망을 담다

여수 돌산, 병풍바위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은적사. 밤이 늦도록 가마솥에 팥을 삶느라 분주하다. 동지를 앞두고 팥죽을 쑤어 함께 나누기로 한다.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작은 설이라 하여 불가에서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절기로 여긴다. 동짓날은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팥죽을 쑤어 먹는데, 삶은 팥을 체에 걸러 팥물을 만들어 놓고 다 같이 모여 두 손을 모으고 정성을 다해 새알심을 빚으며 저마다의 소망들을 기원한다.

겨우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 주기도 하는 팥죽을 나눠 먹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간, 따뜻한 팥죽 한 그릇으로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아 다시 시작하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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