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여행작가 김진영]

지난날 치열하게 살았던 모습이 벽에 그려져 그림 이야기가 된 곳. 논골담길 그곳에선 그런 장면이 익살맞은 표정과 어우러져 묵호항 항구마을의 풍요롭던 시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담벼락 구석구석 그려진 해학적인 그림 이야기들, 마당처럼 펼쳐진 짙푸른 동해 그리고 군데군데 생겨난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산 정상 등대까지 오르는 길에 펼쳐져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힐링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 논골담길에서 바라본 묵호항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으로 가는 길에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산과 산 사이 걸친 아침 안개는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보았던 운해였다. 뜻밖의 이색적인 풍경에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묵호항 수변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 잰걸음으로 방파제를 딛고 올라서니 강렬한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지는 바다 위는 해비늘로 덮여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본 코발트색 바다는 하얀 뭉게구름이 얹힌 맑은 하늘과 맞닿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도 주었다.

나는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고 싶어 묵호등대로 향했다.

▲ 묵호등대

논골 1길, 논골 2길, 논골 3길 그리고 등대오름길 등 4갈래로 이루어진 논골담길은 묵호항에서 묵호등대를 오르는 길을 말한다. 4갈래 길 중 어느 길로 올라도 끝은 묵호등대다.

지난날 묵호 항구의 이야기가 담벼락에 그려져 있는 논골담길은 동네 어르신과 작가, 그리고 여행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로 '벽화'가 아닌 '담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등대담화마을은 과거 명태와 오징어가 많이 잡히던 시절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하여 개 이름을 '만복이'라고 지을 정도로 한때 넉넉하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항구마을이었다.

1980년대 이후 어족자원이 고갈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고자 2010년 동네 담벼락에 그들의 지난날 삶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마을 어르신들은 직접 채색하는 방법으로 작업에 참여하여 이 벽화에 특별한 의미를 더하였다.

▲ 묵호등대 담화마을

예전에 마을 언덕의 높은 곳에는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있어 윗마을에는 덕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았고 아랫마을에는 뱃사람들이 살았다. 논골이라는 마을 이름도 덕장까지 오르는 흙길이 논처럼 질퍽거려서 붙여진 이름이고 이 때문에 “마누라,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도 했다.

논골담길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바다를 앞 마당처럼 바라볼 수 있고 위를 올려다보면 집들이 묵호등대와 한 뭉텅이로 합쳐져 보인다. 또 논골 담길 정상 부근은 해양문화공간의 조형물과 전망대가 있어 더 넓게 바다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최근 정상 부근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 곳곳에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카페가 많이 생겨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로도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1963년에 지어진 묵호등대는 유인등대이며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이며 이를 기념하는 비도 있다.

묵호등대 아래에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출렁다리가 있다. 출렁다리 풍경도 인기 높은 포토존이다. 한국관광공사는 논골담길을 '10월 걷기 여행길, 벽화마을 따라 훌쩍 떠나는 가을 걷기길' 9곳 중 한 곳으로 선정하였다. 동해시를 방문한다면 이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차량 이용 시 주차는 묵호항 수변공원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여행작가 김진영은...

삶은 여행이다. 인간은 다양한 여행을 통하여 더 행복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행은 마음에 여유와 풍요를 주고 고단함을 달래 준다. 그런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하여 사진과 글로 기록하려고 한다.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에 있는 여행작가학교 10기 과정을 수료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글을 쓰고 있으며 더 넓고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 현재는 국제뉴스에 여행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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