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오목대에서 태조 이성계가 읊은 대풍가(大風歌)'
'전주 만경대에서 포은 정몽주가 읊은 우국시(憂國詩)'

'전주 한옥마을내 오목대 전경' 사진 / (사진=임태균 기자)
'전주 한옥마을내 오목대 전경' 사진 / (사진=임태균 기자)

(전북=국제뉴스) 임태균 기자 = 전주 한옥마을내에는 한옥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전주의 한옥만이 간직한 자연의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너무나 아름다운 저녁 야경(夜景)으로도 유명한 나지막하게 솟은 펑퍼짐한 언덕바지 오목대(梧木臺)가 위치해 있으며, 오목대가 글로벌 관광환경 개선사업을 통하여 한옥마을 최고의 아름다운 조망(眺望) 장소로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오목대에서는 전주천을 배경으로 한 남천교 청연루와 전주향교 한옥, 남고산과 모악산 및 전주시내 등도 조망도 확보되었다.

나지막하게 솟은 펑퍼짐한 언덕바지 오목대 바로 아래에 마을인 이목대(梨木臺)가 있으며,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이성계의 선조들은 줄곧 이곳에서 살다가 이안사 때 함경도로 이사했다고 전해지며, 고종 광무 4년(1900)에 이곳이 목조대왕 이안사가 살았던 터임을 밝힌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을 새긴 비석을 세웠고, 이곳의 지명인 교동의 옛 이름은 자만동이었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1380년) 태조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개선길에, 자신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전주이씨 종친이 있는 이곳에 들러 승전 축하 연회를 베풀면서 승리를 자축하였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년)에 태조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석을 건립했는데, 비문은 고종황제가 직접 쓴 친필을 새긴 것으로, 1974년 9월 24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위 오목대에서 열린 승리 자축 잔치에서 이성계가 중국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금의환향하였다는 내용의 마치 건국(建國)의 야심을 드러내는 듯 ‘대풍가(大風歌)'를 노래하자, 운봉 황산 전투에 이성계와 함께 참가하여 위 승전 축하 연회에 참석하였던 정몽주는 이를 마치 쓰러져 가는 고려 왕조를 비웃는 듯하고 또 이성계 자신의 웅대한 포부를 말하는 듯 하였다고 판단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 말을 달려, 오목대 바로 앞 전주천 넘어에 위치한 고덕산 남고산성 만경대에 올라 ’우국시(憂國詩)‘를 읊었다고 한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그들은 고려말 공양왕 옹립까지 뜻을 같이 하는 등 정치적 동지이자 실세였으나, 그 이후의 행적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역사의 반전(反轉)을 보여주면서 많은 생각의 퍼즐을 남겨주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앞 고덕산 남고산성 안내도' 사진 / (사진=임태균 기자)
​'전주 한옥마을 앞 고덕산 남고산성 안내도' 사진 / (사진=임태균 기자)

“태조 이성계가 읊은 대풍가(大風歌)”
大風起兮 雲飛揚(대풍기혜 운비양)
威加海內兮 歸故鄉(위가해내혜 귀고향)
安得猛士兮 守四方(안득맹사혜 수사방)
큰 바람이 일어나서 구름이 날아오른다.
위엄을 해내(海內)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도다.
이에 용맹한 장사를 얻어서 천하를 지키리라! 

“포은 정몽주가 읊은 우국시(憂國詩)”
千仞崗頭石逕橫  登臨使我不勝情(천인강두석경횡 등림사아불승정)
靑山隱約夫餘國  黃葉檳紛百濟城(청산은약부여국 황엽빈분백제성)
九月高風愁客子  百年豪氣誤書生(구월고풍수객자 백년호기오서생)
天涯日沒浮雲合  矯首無由望玉京(천애일몰부운합 교수무유망옥경)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 나 홀로 다다르니 가슴 메는 시름이여 /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세하던 부여국은 /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도다 / 구월 소술바람에 나그네의 시름이 깊은데 / 백년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 하늘가 해는 지고 뜬 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 하염없이 고개 들어 송도만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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