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민간외교관
(서울=국제뉴스)정제헌 기자 =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명성을 얻은 장군이자, 미국 34대 대통령직을 퇴임한 아이젠하워는 전쟁의 상흔이 남은 세계의 모든 자유인들이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기를 바랐다.
그래서 1961년 10월 '국민 상호간의 이해와 우의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 기구이자 민간외교단인 PTPI를 창단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듬해 공식 출범했다.
그리고 1965년 박경원 강원도지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아이젠하워 창립자와 서신을 교환하다, 국제민간기구의 이념과 목표에 감명 받아 춘천 챕터를 창립하고 초대 총재에 부임했다.
각 지방의 사회지도층과 주한유엔군, 그리고 세계본부의 후원으로 1972년 1월 31일 한국 본부가 정식 출범한다. 같은 해에는 당시 해외 순방 교류에 외교력을 동원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정기 간행물인 ‘한누리’의 자필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국 본부는 성인과 학생 챕터로 나뉘어 총 3,5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고, 1973년 제 1차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본부의 신임을 얻어 왔다.
김 총재는 세계본부의 이사이자 8년 간 부총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한 전임 총재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운 김 총재를 정식 총재로 임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2013년 7월, 마침내 창단 48년 만에 첫 여성 총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렵던 소녀, 당찬 꿈을 안고 민간외교 리더로 성장하다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에 청춘을 바친 딸들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는 일이 많았다. 김 총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장차 국제사회의 평화에 기여할 여성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고교 졸업 16년 만에 37세의 나이로 대학에 들어갔고, 2006년에는 석사과정을 이수해 교수진들로부터 교내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칠 겸임교수 제안을 받아 교단에 섰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3년 2월에는 문화예술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는 노력과 인성이 어우러진 인간승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유복하지 못한 환경의 외국인 학생에게 사비를 털어 관광과 한국 문화를 체험하게 해 준 따뜻한 마음, 그리고 고교 졸업 후 갈고 닦은 웅변 실력으로 지역 국회의원의 찬조 연설을 맡아 새벽별을 보는 혹독한 일정을 소화한 강단도 한 몫 했던 것이다.
또, 한국전 참전16개국을 돌며 위로공연을 한 리틀엔젤스재단에 우리나라에 있는 UN군도 위로해줘야 한다며 우리나라 문화사절단의 대명사인 리틀엔절스 초청공연을 성사시켜 '2013 연례대회와 국제친선의 밤 행사'를 인상적으로 치른 김 총재는 서경대 교수이자 시를 쓰는 문인이다.
그는, PTPI의 이념과도 통하는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서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으로서도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가가 있고 개인이 있으며 국가가 융성해야 국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김총재는 내가하는 조그만 일들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개인의 일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또한 먼저 손을 내미는 소통과, 밝은 미소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끄는 삶은 자녀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자녀들은 의학과 약학을 전공하며 반듯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자신을 묵묵히 성원해 준 부군의 저서인 '뚜나바위'를 오페라 극본으로 만들어, 예술의 전당에 올리고 화제를 모으며 메이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가화만사성'은 김 총재를 지탱한 또 하나의 힘이기도 했다.
첫 여성 리더로서 임기와 5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파
2015년은 한국 본부 설립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따라서 김 총재는 민간외교단체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는 ‘50년사 편찬’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단체 출범 때부터 주한유엔군과의 우정을 기념하는 이전 미군기지 내에 한국 PTPI 발원비 건립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50년 간 한국 PTPI를 거쳐 간 소중한 인연들을 다시 만나는 행사로서 한국 PTPI의 붐을 다시 일으키고자 한다.
PTPI 활동은 민간 외교단체면서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가 망라된 넓은 영역이다. 창립 초기, 즉 전쟁 후에는 주한미군, 유엔군과 교류했지만 지금은 다문화 시대의 외국인부모 가정, 외국인 근로자들과의 융합 또한 중요해졌다고 한다.
또한 탈북자의 남한 정착을 돕고, 독거노인들의 집을 순회하며 불편한 시설 수리, 소년소녀 가장의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고충 해결 등을 추진하며, 한반도를 거치는 다른 나라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한국인’을 느끼게 하는 문화적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 마음을 교류하는 민간 외교에 여성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는 너무 빨리 변하는 정보화시대에 인간성을 잃어가는 간극을 진실 된 마음을 나누고 사명감에서 봉사를 하는 것으로라도 메워야 한다는 김 총재는 회원들과 교류하며 각 챕터를 찾아가고 행정적인 지원과 워크샵 교육을 진행하며 열성껏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초심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다.
또,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김총재는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매년 5월 전국의 문학에 뜻이 있는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월백일장을 주관하고, 수필집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에 이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시집을 6월 출간할 예정이다.
김 총재는 민간 외교단체의 장으로서, 이제 50년의 방점을 찍을 한국 PTPI는 조용한 민간외교사절 활동과 봉사활동으로 인해 그동안 전국의 회원들이 많은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인지도가 높지는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외부에 우리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상당한 규모의 사업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사회단체로서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민간 외교단체이면서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한국 PTPI에서 봉사의 개념을 다져놓고, 5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임기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비너스를 낳은 축복의 땅' 사이프러스의 명예 영사가 되고 싶다며 미소 짓는 김 총재가 여성 리더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