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전 규제 앞세운 정부, 공공주택 공급 대책은 잰걸음
현대엔지어링, 포스코이앤씨, DL건설 처벌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천=국제뉴스) 손병욱 기자 = 국토부와 고용노동부가 건설 현장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정책 시그널을 내놓고 있다. 한쪽은 공급 확대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쪽은 초강도 제재를 밀어붙이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규제와 공급 정책이 충돌하면서 주거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최근 “빠르면 8월 안에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9월 초로 미뤄질 가능성도 열어뒀다. 공급 대책은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 3기 신도시, 도심 고밀 재개발 등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와 직결돼 있다.
반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20대 건설사 CEO를 불러 모아 “근로자 1명만 사망해도 공공 입찰 제한”, “삼진아웃 시 면허 취소”라는 초강력 제재 방침을 직접 강조했다.
이미 국회에는 안전관리 위반 시 ‘최대 1년 영업정지, 매출액 3% 과징금’ 부과를 담은 건설안전특별법(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돼 있다. 여당은 여기에 ‘삼진아웃 면허취소’까지 검토 중이다. 사실상 ‘원스트라이크 아웃’에 가까운 규제다.
건설업계는 “안전사고 무관용 원칙은 이해하지만, 모든 책임을 시공사에만 묻는 방식은 공급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호소한다. 특히,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기 힘든 중소업체는 사고 한 번에 공공사업에서 퇴출될 수 있다. 대형사마저 제재를 받으면 공공주택 공급까지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번 기조 변화의 배경에는 지난 2월, 발생한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하는 세종안성 고속도로 붕괴 사고가 있다. 사상자만 10명.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19일, 조사 결과를 내놨다. △ 스크류잭 임의 제거 △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런처 후방 이동 △ 위법한 안전관리계획서 승인 등 모두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스크류잭 제거가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못 박았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를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검토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포스코이앤씨 사고 직후 “건설면허 취소까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면허 취소는 사실상 ‘기업 사형선고’에 해당한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고의·과실로 시설물 주요 구조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 등록말소 가능”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실제 취소까지는 소송전이 불가피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토부는 곧 10대 건설사와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고용부가 ‘채찍’을 앞세웠다면, 국토부는 ‘당근’을 준비해 업계의 숨통을 터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규제 강화와 공급 확대라는 두 기조가 정면 충돌하는 한, 정부의 ‘투트랙 전략’은 구조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려면 건설안전 위반에 대한 페널티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급 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설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특히, 국토부가 곧 열릴 10대 건설사 간담회에서는, 대형 건설사가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직접 참여할 경우 가점제를 부여하는 방식의 제도적 유인이 필요하다.
현행 주택 공급 구조는 자본력이 부족한 소규모 시행사가 토지 매입 단계부터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기간이 장기화되고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자금난으로 사업권이 대형 건설사로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는 대형 건설사가 뒤늦게 시공만 맡는 구조에서는 토지 매입부터 분양까지 여러 단계의 비용과 마진이 추가돼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형 건설사가 토지 매입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사업을 주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금융 비용을 줄여 분양가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선도적으로 시행·시공하는 건설사에 플러스 점수를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한다면, 공공임대주택 공급 활성화와 안정적 주택 공급 기반 마련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