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병뚜껑 2만 개가 만든 예술, 제주의 숨결을 담다
2025 세계유산축전, 자연유산수호캠페인 '업사이클링 아트윅" 3개 작품 자연유산 지키는 ‘작은 실천’, 예술로 피어난 탄소중립 메시지 고의경 기획자, “자연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
(제주=국제뉴스) 문서현 기자 = 2025 세계유산축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그 입구에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는 설치작품이 하나 있다. 폐플라스틱과 병뚜껑, 페트병을 활용해 만든 조형물, 이름하여 ‘용암의 길’이다.
이번 작품은 ‘자연유산수호캠페인–탄소중립: 업사이클링 아트웍’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다. ‘용암의 길’ 외에도 ‘성산일출봉을 품은 해녀’와 ‘불의 숨길’ 등 총 3개의 작품이 제주의 자연 속에 설치됐다.
‘용암의 길’과 ‘성산일출봉을 품은 해녀’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 ‘불의 숨길’은 덕천리 워킹투어 1구간 종료 지점에 설치됐다.
작품을 기획한 인물은 바로 고의경 기획자다. 지난 21일,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그녀를 만났다. 정갈한 단발머리와 환한 미소, 그 모습에서부터 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고 기획자는 먼저 이번 캠페인의 출발점이 ‘탄소중립과 예술의 연결’이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믿었어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죠.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닿게요"
고 기획자는 예술이 가진 공감의 힘에 주목했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페트병과 병뚜껑을 모으고, 이를 예술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동참했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탄소중립 실천’이자 교육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병뚜껑 2만 개로만 완성된 ‘성산일출봉을 품은 해녀’. 병뚜껑 하나하나의 색을 살려 제작된 이 작품은 도내 35개 기관과 주민들이 직접 병뚜껑을 모아 완성됐다.
고 기획자는 그 과정에서 들려온 말 중 하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주민 한 분이 ‘이거 우리 동네에서 주운 거야’라고 하셨을 때, 정말 울컥했어요. 이건 단순한 설치미술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든 기억이죠. “병뚜껑은 몇 분 만에 버려지지만, 자연에서 분해되려면 500년이 걸려요. 바다는 지금도 파괴되고 있어요.”
고 기획자는 플라스틱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전했다.
"연간 3억 3000만 톤이 생산되고, 매년 1,270만 톤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2050년이면 바다 속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강 기획자는 이어 말했다.
“지금처럼 플라스틱을 버리는 삶을 계속한다면, 2050년엔 바다 속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현실을 예술로 시각화하고 싶었어요.”
‘용암의 길’은 그런 그녀의 의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산의 숨결처럼 일렁이는 플라스틱의 흐름 속에는 인간의 소비와 폐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용암과 플라스틱은 정반대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흐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화산은 자연의 생명력이고, 플라스틱은 인간 문명의 그림자죠. 그 두 흐름을 교차시켜 우리가 만든 현실을 직시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전하기 위해 그녀는 ‘화산의 숨결’과 ‘플라스틱의 흐름’을 함께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용암처럼 흘러가는 폐기물의 흐름은 단순히 쓰레기가 아닌, 우리 소비 방식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번 작품 제작에는 강문석 조각가, 김영화 조형물작가, 박소연·양천우 회화작가 등이 참여했고, 마을 주민들도 손을 보탰다. 병뚜껑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붙이면서 세대 간 협력도 이뤄졌다.
고 기획자는 이번 캠페인의 본질을 이렇게 정리했다.
“환경 문제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무엇을 사고, 어떻게 버리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예요. 누구나 자원순환의 주체가 될 수 있죠.” 쓰레기를 자원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 여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그녀는 “작은 실천이 모이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며, “버려지는 것들을 예술로 다시 살리는 일처럼, 지속가능한 예술은 결국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
“자연유산을 지키는 건 거창한 보호활동이 아니에요. 그 가치를 함께 느끼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죠.”
고의경 기획자와 나눈 한 시간 남짓의 대화는,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울림의 시간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자연을 향한 진심이 묻어났다. 그 마음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지길, 조용히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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