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종현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 "정성 담긴 요리처럼, 진심 담긴 정치로 대접하겠다"
(수원=국제뉴스) 김만구 기자 = “시국도 어수선하고, 제가 요리전문가도 아니고, 요리 인터뷰가 적절할까요.” 기자가 “정치나 인생 모두 먹고사는 문제인데. 어떠세요” 되묻자, 최종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은 그제서야 인터뷰에 응했다.
최 대표가 3년 전 ‘아빠의 손맛’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한 것을 듣고 궁금증이 들어 인터뷰를 청했다.
“김치볶음밥이 특기예요. 저는 삼겹살을 잘 사용하거든요. 삼겹살을 잘게 썰어 볶으면 기름이 생겨요. 김치를 넣고 볶은 다음에 옆으로 빼놨다가 밥에 참기름을 살짝 뿌려 손으로 막 이렇게 무쳐. 그러면 쌀 알이 다 떨어져요. 올리브유나 콩기름을 넣고 밥을 다시 또 볶아. 볶은밥을 옆에 계란을 풀어 약간 익힌 다음에 같이 막 섞어요. 다음에 이 김치하고 삼겹살 기름하고 섞으면 맛이 끝내주죠. 우리 애들도 엄마가 해준 것보다 제 김치볶음밥을 훨씬 좋아하죠.”
최 대표는 북한 입쌀만두부터 인도네이아 볶음밥(나시고랭), 강원도 감자어묵 등 못하는 요리가 없다. 유튜브를 보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뚝딱 해낸다.
“김치볶음밥을 우리 가족에게 해주듯, 정성껏 요리한 정책을 도민들에게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강원도에서 살다가 수원에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결혼하기 전 30세까지 혼자 자취를 했어요. 처음에 하숙했는데 밥 먹는 게 싫더라고요. 자취하면서부터 직접 요리를 했죠.”
- 중 1에 요리라, 쉽지 않았겠는데요. 처음에 한 요리가 뭐였어요?
“밥과 된장국이었죠.”
- 된장국은 끓이는 방법을 아셨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공직에 있던 아버님이 출근했다가 오시면 요리를 하셨어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렸죠.”
- 장도 직접 보셨나요?
“수원 행동(옛 신풍동)에 살았는데 근처 지동시장이나 슈퍼 가면 다 팔았어요.”
- 너무 어렸는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수원에서 1년 근무하시고 강원도로 복귀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자고 했는데 전 안간다고 했죠. 북중학교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 때는 할 줄 아는 게 김치찌개하고 된장찌개정도였죠. 제일 맛있었던 게 김치찌개죠. 예전에는 정육점에 가면 비계를 반 근 씩 팔았던 것 아세요? 제일 쌌죠. 작게 잘라서 김치 넣고 끓이면 진짜 맛있죠. 지금도 침 넘어가네.”
최 대표는 수원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가 곧바로 입대했다. 제대한 후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가톨릭 농민회를 조직을 했다. ‘농촌에 뼈를 묻겠다면서...’ 1987년 서울대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고, 연세대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의해 사망하는 등 민주화 운동이 격렬한 시기였다. 민주화 운동의 사회적 반향은 당시 ‘최종현’군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그해 최 군은 농민회를 조직해 고향 양구에서 활동했다.
- 보통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면 취직 걱정을 하잖아요?
“당시가 막 데모할 때잖아요. 제대 후 농민운동에 투신한다고 하면서 강원도 양구에서 가톨릭 농민회를 조직했어요. 난 농촌에 뼈를 묻겠다면서. 낮에는 아버지 축산일 돕고 밤마다 친구들이 모여서 작당을 한 거지. 그러니까 면장이 막 쫓아오고, 우리가 어디 모여서 회의하면 밤에 파출소장이 와가지고 막 잡아가고 그랬거든요. 파출소에 잡혀가면, 아버지가 저 때문에 고생하셨죠. 제가 성당을 다녔어요. 성당 신부님이 광주민주화항쟁의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시며 ‘최종현요한’ 네가 카톨릭 농민회을 조직하라고 하셨어요. 87년도 말부터 89년까지 농민 운동했는데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만두게 됐죠.”
최 대표는 교통사고 이듬해인 스물 여덟에 필리핀으로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을 다녀왔다.
- 농민 운동 후 해외봉사단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네요?
“병원에 있을 때 신문에서 해외 봉사단 모집 광고를 봤죠. 축산 분야로 지원을 했죠. 그때 코이카가 생기기 전 한국유네스코에서 해외봉사단 사업을 했어요. 그후 코이카에 흡수되었지요. 봉사단은 44명을 뽑았어요. 축산대학 졸업한 친구들과 경쟁을 했는데 실기에서 1등으로 뽑혔죠. 2년 동안 또 필리핀 산속에서 혼자 살았죠. 필리핀에는 루손, 세부, 민다나오 섬이 세 개인데 민다나오섬 맨 끝 제일 위험한 곳에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2년간 봉사활동을 했죠. 그 동네에는 한국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었는데, 그 기간이 제게는 보람되고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
- 어떤 봉사를 하셨나요?
“아버지가 공직 퇴직하시고 축산업을 하셨어요. 그 옆에서 눈동냥한 기술로 돼지와 소 기르는 법, 치료하는 법, 새끼 낳는 법, 인공 수정하는 방법을 청년들에게 가르치고 4-H클럽을 담당했어요. 제가 가르친 친구중 그곳에서 시의원이 된 친구도 있습니다."
- 필리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을 텐데요?
“배추를 심었는데 잘 안 크더라고요. 조그맣게 자란 오이 배추로 한국 고춧가루를 공수해 김치 담가 먹었죠. 아버지가 택배로 고추장, 된장도 보내주셨거든요. 제가 살던 곳에는 참치도 많이 잡히는 데 (양 팔을 벌려서)이렇게 큰 걸 사다가 숯불에다 구워 먹었던 거 아직도 생생하네요.”
최 대표는 30세에 결혼하면서 요리 인생은 그 즈음 마무리됐다. “새벽에 직장에 나가 저녁에 늦게 들어오니 요리를 할 수 없었죠. 열심히 살다가 과장님 꼬임에 빠져가지고 둘이 퇴사를 해 IMF 딱 터지기 전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쫄딱 망했죠. 1999년도인가. 내 이름으로 재개했다가 또 망했죠. 제가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아내가 엄청 힘들었죠. 다시 사업을 해 일으켰고, 7년 전 정치를 시작했어요.”
정치를 하면서 최 대표는 요리도 다시 시작했다. 요리 유튜브를 통해서다. ‘아빠의 손맛’이라는 제목으로, 5~10분 분량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손쉽게 뚝딱뚝딱 해낸다. 카메라 3대로 촬영하고 편집도 직접한다.
- 30세에 요리를 그만두셨다고 하니까 도의원 하면서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거네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정도 했죠. 골목 식당 찾아가서 상권도 살리고, 또 거기서 본 요리도 다시 해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요리도 대접하고요. 11대 도의회에 들어와서는 시간도 없어서 요리 유튜브를 못하고 있어요.”
- 요리가 재밌으세요?
“저는 요리가 좋아요. 회식을 하면 고기 자르는 게 좋아서 하는 것인데, 직원들은 불편해해요. 고기를 잘라 밥까지 비벼서 딱 주잖아요. 직원들이 잘 먹으면 기분이 좋아요.”
-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무엇인지요?
“김치볶음밥. 저는 삼겹살 같은 거 잘 쓰거든요. 삼겹살을 잘게 썰어 볶으면 기름이 생겨요. 김치를 넣고 볶은 다음에 옆으로 빼놨다가 밥에 참기름을 살짝 뿌려 손으로 막 이렇게 무쳐. 그러면 쌀 알이 다 떨어져요. 올리브유든지 콩기름이든지 넣고 밥을 다시 또 볶아. 볶은 쌀을 옆에 계란을 풀어 약간 익힌 다음에 같이 섞어요. 다음에 이 김치하고 삼겹살 기름하고 섞으면 맛이 끝내주죠. 제 아이들도 아내보다 제가 해준 볶음밥을 더 좋아하죠.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해 주신 향수가 담긴 볶음밥이죠.”
- 계량컵을 쓰시나요?
“TV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 봤어요? 그게 내가 추구하는 원래 요리예요. 어떤 레시피가 있는 것보다 재료가 있든 없든 무조건 만들어 내는 것이 주특기죠. 정치도 예산이나 기존 정책을 잘 요리해 도민들에게 담백하게 대접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 냉장고를 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이신다고 했는데, 정치도 마찬가지인가요?
“직장 다닐 때 전기 장비를 보면 설계 도면대로 됐는지 딱 보였죠. 어떤 부분이 잘못 됐는지도 금방 알고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정치도 그런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된장국을 만들 듯 묵직하게, 진솔하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죠.”
- 김치볶음밥이 주특기라고 하셨는데, 정치에 좀 비유하면 어떤가요?
“김치는 서민적이면서도, 한국인에게는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김치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볶음밥을 만들잖아요. 여러 민원과 정책 제안을 받아서, 정책을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치라고 봐요. 전 요리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합니다. 요리는 항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않습니까. 제가 했던 유튜브 한 번 보세요. 칼질을 할 때나, 요리할 때 가짜로 흉내 내지 않고 몸에 배어 있는지 한 번 봐주세요.”
최 대표는 이번 임기 동안 명인의 기술을 계승하는 ‘전통식품 계승’ 조례를 제정했고, ‘장애인 보조견 보급 촉진 및 자산 형성 지원 조례’ 등도 만들었다. 장애인 자산 형성 조례는 한국지방자치학회 우수 조례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경기도 예산을 따내서 매탄공원과 머내생공원에 황톳길을 조성했고, 매여울·매화어린이공원도 리모델링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 혼자 요리를 했잖아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닙니까. 요리나 정치 모두 우리 삶과 맞닿아 있잖아요. 정치인으로서 도민들에게 대접하는 요리 인생을 살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겁니다. 훌륭한 요리사분들이 많은데 제가 너무 장광설을 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