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짜리 그릇, 그 위의 피자를 먹다
(서울=국제뉴스) 정시준 기자 = 제주의 신선함을 그대로
그야말로 피자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획일화된 맛이 아닌 색다른 맛을 찾는 소비문화가 확산되며 경쟁력 있는 아이템과 독특한 콘셉트만으로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소규모 피자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색다르면서도 맛있는 피자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이러한 피자 맛집을 찾아 먼길을 마다하지 않는 진풍경도 낳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에 방문한 이들이 반드시 들러본다는 피자 명소가 바로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화덕피자전문점 '제주모루'다.
아늑하고 아담한 주방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의 '제주모루'는 제주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피자 맛집이다.
제주에서 8년간 피자집을 운영해온 임경모 쉐프는 "모루는 ‘높은 곳의 평지’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고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특이하게도 '제주모루'는 외국인들에게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100% 자연산 치즈를 사용해 치즈의 향긋한 풍미를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상큼한 감귤을 넣어 제주의 특성을 살린 ‘제주피자’, 블루베리와 크랜베리를 올린 '베리베리요거트피자' 등의 메뉴들은 해외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3년간의 노력, 세계 최초 '캔들팬' 개발
외식창업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임경모 쉐프만큼이나 투철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는 이는 흔치 않다. 새롭고 낯선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리스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 쉐프는 "처음 매장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이런저런 실험에 열중하느라 손님들의 호불호도 많이 갈렸습니다. 새로운 메뉴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낯선 것에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그만큼 적과 아군도 많이 생겼었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갖은 어려움에도 임 쉐프의 도전정신은 굽힐 줄을 몰랐다. 제주피자와 베리베리요거트피자 같은 메뉴는 그가 최초로 개발한 메뉴들이며, 메뉴에 대한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스토리 메뉴판도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그의 고심이 묻어있는 작품이다.
임 쉐프의 도전정신이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은 바로 ‘캔들팬(Candle Pan)’이다. 대류열과 전도열을 동시에 적용한 세계 최초의 피자용 그릇인 캔들팬은 피자에 대한 그의 열정과 정부의 지원사업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임 쉐프는 "화덕에서 구워나오는 피자는 그 순간부터 점점 식어가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굳어가는 치즈와 눅눅해지는 도우는 피자의 맛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죠. 관련 도서나 특허 선행기술조사, 인터넷 등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이 문제를 해결한 그릇을 찾을 수 없더군요. 결국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이 문제를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릇 전체에 열이 골고루 전달되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그리고 사용과 관리에도 어려움이 없는 그릇을 만드는 데에는 3년이라는 시간과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다.
그동안 초기 관 형태로 구상했던 그릇은 점차 판 형태로 변화했으며, 1개의 부품에서 총 19개의 부품으로 디테일을 더해갔다.
그렇게 개발된 '캔들팬'은 중앙과 사이드의 온도차가 10도 이내로 균등하며, 수분 배출이 원활하고, 연료는 초 하나만으로 가능한 형태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임 쉐프는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는 과정에서 생산기술연구원, 제주대 창업지원단, 중소기업R&D 지원단, 제주지식 센터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성공은 좋은 요리사의 길을 걷다보면 오는 것이다
피자의 첫 조각에서 마지막 조각까지 식거나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바삭한 맛을 유지해주는 캔들팬의 개발과 함께 '제주모루'의 성공적인 안착을 일궈낸 임 쉐프는 최근 프랜차이즈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은 여러 가지 공부와 캔들팬 개발에 온힘을 쏟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특히 전쟁터 같은 창업시장에서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다른 이를 떠밀 수는 없었거든요.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대중성을 획득한 차별화된 메뉴들, 청정 제주지역의 식재료들과 세계 유일의 캔들팬을 통해 충분히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으라는 판단이었다.
다만 임 쉐프는 '성공만큼이나 자부심'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일에 뛰어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얼마나 지속적, 자존적으로 즐겁게 하느냐라는 것이다.
그는 모루가 제시하는 미래가 창업자들에게 '스스로 하는 일에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영업자가 아닌 좋은 요리사를 목표로 하는 '제주모루'와 임경모 쉐프가 만들어 낼 ‘행복한 성공’의 모습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