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낭만이 가득한 동해"

2022-11-07     한경상 기자
소설가 전정희/저서 '묵호댁', '하얀 민들레', '두메꽃' 등

동해는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삶의 터전을 옮겨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 한쪽에 아득히 그립고, 언제든 달려가 안기고 싶은 곳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해수욕장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바다가 그렇게 좋은 곳인지도 모르고 집에서 5분이면 걸어서 도착하는 망상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탁 트인 바닷가를 보고 자라서인지 도시는 늘 답답하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동해를 찾을 때면 소풍 가는 소녀처럼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강원도 남동부에 있는 동해는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에 이어 강원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영동 지방에서는 두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인구 밀도는 속초시에 이어 강원도 2위이다. 42번 국도를 통해 백복령을 넘어가면 정선군이 있고 남쪽은 7번 국도로 삼척시, 북쪽은 강릉시 옥계면과 접한다. 또 묵호항에서 여객선을 타면 울릉도로 갈 수 있다.

동해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도시다. 우선 손꼽을만한 관광지로 새해에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 추암해변과 촛대바위, 무릉계곡,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묵호등대, 논골담길, 천곡황금박쥐동굴, 용추폭포와 쌍폭포, 망상오토캠핑장, 묵호항 등이 있다. 얼마 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문을 열었고 바닷가에 베이커리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두타산 무릉계곡을 다녀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무릉계곡은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4㎞에 달하는 계곡을 말한다. 조선 선조 때 삼척 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무릉반석, 푸른 못 등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하였고, 이곳을 찾았던 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기념 글귀가 반석에 새겨져 있다. 계곡 입구에는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은 소(沼)라는 전설이 있는 호암소, 구한말 유림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금란정이 있다. 용추폭포와 쌍폭이 장관인 무릉계곡은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2월 5일 명승 제37호로 지정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와 반다비가 반겨주었다. 둘러보는데 삼화사에서 옥류동까지 왕복 50분이 소요되는 가벼운 제1코스부터, 두타산성, 청옥산, 연칠성령, 사원터, 입구까지 순환 9시간이 소요되는 제12코스까지 다양한 경로의 등산코스가 있다.

무릉계곡의 초입인 신선교에 들어서자 계곡이 보이고 멀리 무릉반석이 보였다. 무릉반석까지는 노약자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이 평탄하게 잘 닦여져 있다. 숲속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이름 모를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걸었다. 공기도 확실하게 달라 상쾌하다. 이 상쾌한 공기를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비닐봉지에라도 담아서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다. 오가는 길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의자가 사진을 찍고 가라는 듯 부르는 것 같다.

무릉반석에 도착하자 평평하고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다. 어른 1,000여 명이 앉을 정도로 넓은 반석 주변에는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계곡을 한참 바라보다 삼화사로 향했다. 삼화사 앞에는 십이지 간 돌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띠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타산 입구부터 산길을 걷는 내내 곱게 물든 단풍이 혼을 쏙 빼놓는다. 어디에 눈을 두어도 울긋불긋, 차마 물감으로는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두 겨울 채비를 하느라 잎을 빨갛고 노랗게 물들이고, 이내 땅으로 수북이 떨어져 쌓일 것이다. 봄에 싹을 틔워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가을에 저리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숲에 경건한 마음조차 생긴다.

단풍 사이로 언뜻 내비치는 하늘은 맑고 드높다. 풍광이 좋은 곳에 서서 카메라에 담아보지만, 실제의 모습을 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눈으로, 가슴으로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본다.

동해에 왔으니 망상해수욕장을 가보지 않을 수 없어 서둘러 내려왔다. 망상해수욕장은 얕은 수심과 넓은 백사장, 그리고 울창한 송림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매년 600~700만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망상오토캠핑장에 카라반을 예약해두었다. 카라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렁이는 바다가 바로 코앞이다. 밤새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던 추억이 아련하게 소환된다. 모래사장과 파도 소리, 캔맥주를 부딪치며 깔깔거리던 웃음소리,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안주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행복했었던 그 순간들, 그 바닷가의 낭만과 추억이 오롯이 느껴진다.

새벽녘 얼핏 눈을 뜨자 주변이 온통 벌겋다. 서둘러 옷을 입고 바닷가로 나갔다. 해가 뜨고 있었다. 사람들이 해변으로 모여들어 떠오르는 해의 장엄함을 담고 있었다. 동해에 자주 오지만 오늘처럼 해가 뜨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본 적은 드물다. 해가 뜨는 것을 보려면 날씨도 따라주어야 하는 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해 뜨는 명소는 추암 촛대바위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 화면으로 유명한 촛대바위는 거북바위, 부부바위, 형제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등 기암괴석이 온갖 형상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촛대처럼 기이하고 절묘하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다. 자연경관도 수려하고 아침 해돋이가 가히 장관이라 새해를 맞이하여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온 김에 산책을 나섰다. 이른 아침에 사람 없는 바닷가를 걷는 것도 오랜만에 해보는 일인데 고즈넉하니 좋다. 천천히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로를 걸었다. 동해는 숙박과 각종 편의시설의 확충으로 사계절 관광지로 변모해 가고 있는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오토캠핑장 끝자락에 한옥으로 지어진 숙박시설은 내부가 어떨지 묵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날이 밝자 묵호의 논골담길로 향했다. ‘한국의 산토리니! 추억과 낭만의 묵호등대!’라는 글귀가 보이는 벽 위를 올려다보면 야트막한 비탈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고 가장 높은 곳에 비쭉 솟아있는 등대가 보인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인데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논골담길 맞은편에 있는 해랑전망대도 꼭 들러야 할 장소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복합체험 관광지로 해발 59m 높이의 스카이워크와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하늘 위를 달리는 자전거인 스카이 사이클, 원통 슬라이드를 미끄러져 약 27m 아래로 내려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을 갖췄다.

논골담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논골1길과 3길, 등대오름길로 구성된 이 길은 어느 곳으로 올라가도 묵호등대에 갈 수 있다. 논골담길의 역사는 묵호항이 열린 1941년부터다. 돈을 벌기 위해 험한 뱃일이나 허드렛일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묵호항이 가까운 언덕배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 벽돌과 슬레이트로 집을 지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당시 아랫마을에는 뱃사람들이 머물고 윗마을에는 덕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의 벽화에는 유독 오징어와 명태, 장화를 신은 마을 사람들의 그림이 많다. 가장 높은 곳에는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있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바람의 언덕 전망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다. 배 타러 간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 강아지의 형상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내 눈앞에 나타난 등대, 구불구불 돌아서 등대 꼭대기에 오르니 묵호항부터 도째비골의 전망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묵호등대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과 연속극 <찬란한 유산>에도 등장한 장소다.

논골담길을 내려오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지붕과 바다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왜 이곳을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골목에서 보았던 벽화에서 삶의 애환이 느껴져서인지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장화를 신은 채 명태와 오징어를 머리에 이고 혹은 양동이에 담아 언덕을 오르내리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풍경이지만 그 시절 삶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이 마을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필자가 둘러본 곳 외에도 동해에는 천곡황금박쥐동굴, 묵호항, 묵호 야시장, 북평 민속 5일장, 감추사 등 가볼 만한 곳이 꽤 많은 곳이다. 쾌적해진 교통으로 인해 동해는 이제 하루 코스로도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러나 동해를 제대로 보려면 며칠 숙박을 해야만 구석구석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잠깐 머무르다 갈 장소가 되느냐 아니면 몇 날 며칠 작정하고 찾는 장소가 되느냐는 동해시와 주민들이 연구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언제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낭만을 가득 품고 있는 동해, 그 동해에서 시린 가슴 한쪽을 잠시나마 꽉 채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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