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국민연금·공정위·여당, 전방위적 압력
대통령실 주변 새 대표 후보 이름 거론
참여연대, '기업가치 훼손' 대표 연임 반대
잇따른 연임 반대에 구 대표 ‘성과’ 가려지나

사진/KT
사진/KT

(서울=국제뉴스) 이상배 기자 = KT 구현모 대표의 연임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연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리나라 대표 통신기업 KT 수장을 선임하는 데에 ‘윤석열 정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기업을 차치하더라도 NH농협금융지주, BNK금융그룹 등 금융기관 대표 임명에도 잇따라 정부의 입김이 만만치 않다는 비판에 이어 이젠 민영화한 지 20년이 넘는 통신기업 KT에도 2년 차로 접어드는 정권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뛰어난 성과로 연임이 무난할 것으로 평가됐던 구현모 KT 대표의 앞날은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대주주 국민연금, 연임 반대 표명

9일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논란은 지난해 12월28일 KT이사회가 구현모 현 KT 대표이사를 최종 후보로 확정 발표하자마자 같은 날 국민연금이 보도자료를 내면서 시작됐다.

국민연금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금이사는 지난 27일 취임 인사 과정에서 말씀드린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면서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소유 분산 기업의 대표 선임 과정에서 내외부 인사 후보와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민연금 측 주장이라는 얘기다.

앞서 KT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는 우선 심사에 따라 ‘연임 적격’ 판정을 내렸다. 임기 3년간 추진한 디지털플랫폼기업(DIGICO·디지코) 전략이 기업가치를 극대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이사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으면 최고경영자 단독 후보자로 추대돼 다음 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확정되는 게 일반적 관행이었다.

이전 국민연금은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소유분산기업)’에서 회장이 거듭 연임하는 ‘황제 연임’에 대해 지적한 바가 있었고, 구 대표는 이로 비롯되는 ‘잡음’을 막기 위해 복수 후보 경선을 역제안했다.

이에 따라 KT 지배구조위원회는 14명의 사외 인사와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검증된 13명의 사내 후보자에 대한 대표이사 적격 여부를 검토했다. 그리고 대표이사 후보심사위는 지난달 28일 최종적으로 구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자로 인정, 대표 염임을 확정지었고, 국민연금은 즉각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

■3월 주총, ‘표대결’로 판가름?

9일 현재 국민연금은 KT 지분 9.99%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하반기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KT 지분 감소에 나서 지난 한 달간 장내 매수·매도를 통해 보유 KT 지분율을 기존 10.35%에서 9.99%로 줄였다. 그래도 국민연금은 구 대표 연임을 좌우할 ‘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국민연금이 구 대표 연임 반대 의사표시를 공식화해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은 불가피하다. 구 대표 연임 가부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비관적이지도 않다. 전례를 보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안건이 통과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2021년에도 유영상 SKT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이에 관계 없이 재선임에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통신기업이라 더욱 그렇다.

더욱이 KT는 현대자동차그룹, 신한은행 등과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긍정적이다.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가 7.79%, 신한은행·신한생명보험·신한투자증권이 5.48%의 KT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그 관계가 돈독하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자율 주행, 도심항공교통(UAM)이나 AI활용 금융 등 금융디지털화 부문의 사업적 협력이 필수적이라 이들 기업은 사실상 KT 측 우호 지분으로 여겨진다. 단지 이들 기업도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어 제한적이라는 점 탓에 반드시 우호적이지는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구 대표는 지난 2일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불참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현 정부와 매끄러운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입방아가 나오는데, 구 대표가 문재인 정부 때 선임된 인물이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KT는 2002년 민영화가 됐지만, 주인 없는 기업인 데다 주요 국가기간 통신망을 다루는 업체라는 특성은 그대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왔고, 구 사장 이전 남중수 전 KT 대표이사 사장, 이석채 전 KT 대표이사 회장의 경우 둘 다 연임에는 안착했지만 ‘정치적 외압’ 탓에 중도 하차한 전례를 남기기도 했다.

■정부 여당+참여연대 압력, 첩첩산중

구 대표이사의 연임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여권은 물론 정부에서도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KT 차기 대표 선정 과정을 ‘밀실 담합’이라 폄하했다. 그는 심지어 “KT는 지난 3년간, 공공의 유산을 물려받은 국민 통신기업임에도, 본업인 통신을 도외시해 국가 미래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통신 서비스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면서 “탈통신 정책으로 국가적 손실을 야기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 KT를 당황케했다.

더욱이 공정거래위원회도 KT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달 12일부터 공정위는 KT텔레캅이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에 대해 현장 조사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 공정위는 모회사인 KT의 힘이 작용했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 KT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업체의 운영에 전직 KT 고위 임원이 개입했다는 말이 있어 공정위가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여당·정부 압력의 노골화에 따라 대통령실 주변에서 차기 KT 대표 후보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과거 자유한국당 20대 국회의원으로 과기정통위에서 활동한 김성태 전 의원, KT 전무 출신으로 삼성SDS 대표를 지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알려진 홍원표 씨 등이 거명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엎친데덮친격이라고 시민단체까지 구 대표의 연임 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난 5일 참여연대는 민주노총·재벌개혁경제민주화네트워크·KT새노조와 함께 논평을 내고 "횡령·정치자금법을 위반한 KT 구현모 대표의 연임 시도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참여연대는 또한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 권익을 침해한 대표이사를 연임시키는 KT 이사회의 결정은 선관주의·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으로서 부적격한 KT 이사의 선임을 반대해 왔고 이번에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국민연금을 긍정적으로 인정했다.

구 대표는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과거 황창규 전 회장 시절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다음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지난해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KT에 해외부패방지법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630만달러를 부과했다.

■구 대표, 재임 중 성과 이어질까

이 때문에 구 대표의 나름대로 ‘빛나는 성과’가 묻히고 있다.

KT의 지난해 주가는 2008년 통합 출범 후 최고의 성과를 기록했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9일 보고서를 통해 “KT의 주가가 상대 수익률 기준 2022년 47%로 2008년 통합 KT 출범 이래 최고의 성과를 냈다”며 “2021년과 2022년 모두 업종 내 최고 상승률 및 지수 대비 아웃퍼폼”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CEO인 구현모 대표는 지난 3년간 실적, 배당, 주가 등의 성과가 우수하기 때문에, 연임 시는 향후 3년의 성과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5만2000원을 유지했다. 전 거래일 기준 현재 주가는 3만3950원이다.

실제 구 대표 취임 무렵인 2020년 3월30일 기준 1만9700원에 머물렀던 KT 주가는 이후 신고가를 잇달아 경신하며, 지난해 1월25일 종가 기준으로 55% 상승한 3만550원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 1987년 KT 연구원으로 입사한 구 대표는 KT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후 기존 고착화된 오래된 통신회사 이미지가 강했던 KT를 ‘디지코플랫폼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코플랫폼기업이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고객의 삶의 변화와 다른 산업의 혁신을 리딩 기업을 말한다. 이에 따라 재임 기간 KT 주가는 90% 급등했고, 영업이익은 40% 가까이 개선됐다.

이처럼 구 대표 재임기간 중 상당한 성과가 황창규 회장 시절 윗선의 지시로 빚어진 ‘사법 리스크’에다 정부 여당의 노골적인 연임 불가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지 오는 3월 정기주총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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