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토 에이코, “오키나와 지자체도 강제연행과 관련 쵸(町)·손(村)별 조사 진행”

▲ 향토사학자인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67.여)씨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고광명 (사)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원 부설 재외제주인연구센터 센터장.

(오키나와=국제뉴스) 고병수 기자 = 오키나와 시민단체인 恨의 碑 모임 회원이자 향토사학자인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67.여)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오키나와전(沖縄戦)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을 연구하는 향토사학자로 거듭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자와 시민단체들이 해야 할 일을 오키나와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를 하고 있어 한국인의 한사람으로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자비를 들여 시민단체 운동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그녀에게 연구의 범위와 동기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와 함께 고광명(高廣明) 박사와 기자가 만난 오키나와 시민단체 아사토 에이코(安里英子. 沖縄恨之碑の會) 대표는 “일제강점기 오키나와 강제연행에 타이완, 중국, 한국인 등이 동원됐다”며 “중국은 30주년을 계기로 관심 갖고 있다. 오키나와 지자체도 강제연행과 관련해 쵸(町)·손(村)별 조사가 진행 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토 에이코 대표는 “오키나와 전쟁 중 오키나와, 조선, 타이완 출신 등 구술채록 중 조선인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작년부터 오키나와 현청(県庁)에서 군속·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해 일본 지자체의 연구도 일부 시작되었음을 내비쳤다.

혹시 제주인 명단을 들은 바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 회원 중 4·3 동백꽃 뺏지를 달고 있어 이에 대한 질문에 “2018년 4월 1일 4·3 70주년 기념식에 18명이 갔다 왔고, 제주4·3연구소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뱃지를 받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뱃지를 달고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오키모토 후키코씨는 조선(한국인)인 자료 중에서 제주인 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그녀의 다양한 향토사 연구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다.

▲ 4·3 동백꽃 뱃지를 달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회원 모습.

다음은 일문일답

- 어떤 연구 활동을 하고 있나?
 
▶ 오키나와전(沖縄戦) 증언집이 있다. 재일조선인에 대해 지역별로 증언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 조선인 중 제주도민 포함됐나?

▶ (일제강점기 당시)조선인 군인·군속 중 제주도 출신이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정부에 3500명 명단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 군대의 군속으로 소속된 조선인은 미군 공습 등에 의해 사망됐으나 명부나 소속부대는 모른다. 또한 군함 승무원으로 근무한 오키나와와 조선인 출신이 대략 2800명 중 제주 출신이 포함됐다.

사망한 사람 중 2000명 정도가 오키나와에서 사망했다. 제주 출신 등 사망자만 오키나와 평화공원에 380명이 각명되어 있으며 최근 15명이 추가됐다.

미야코섬(宮古島), 이리오모테섬(西表島), 이와야미(奄美) 지역에서 석탄 생산 등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제주인은 몇 명인지 정확히 모른다.

조선, 대만 등 강제 노동자 600명 정도가 오키나와 섬들의 해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앞으로 추진할 연구 분야는 오키나와에 있었던 144개 위안소 등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 연구 상황을 설명해 달라.

▶일본정부는 오키나와에서 전사한 조선인 명부 3463명을 공개했다. 1993년 일본에서 공개된 명부 중 명부에 올리지 않는 것은 없었다. 일본정부 명부, 일본에서도 확인했다.

일본정부 명부는 창씨개명 명부로, 한국정부 명부는 한국 이름으로 돼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3464명과 함께 기타 사망자 명부, 미군에 발견된 명부, 배를 타고 한국으로 귀환한 명부 1600명 등 명단을 확보해 연구 중이다.

특히 발표가 안 된 명부도 있다. 오키나와 방위축성 부대 조선인 명부, 자유한인보 명부 등이며 하와이 포로수용소 2800명 명부는 한국에서도 가지고 있다. 이중에 제주도 출신이 있다.

미야코섬(宮古島)에서 사망한 명부도 있다. 전시조선인 강제 노동 실태자료집 등은 도쿄(東京)에 있는 국립 고문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와 문제점은?

▶하와이 등 포로수용소에서 조선 출신이 수감된 기록을 찾아 연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과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는 숫자만 정리해 일제강점기 강제연행 조선인 사망자 등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저는 앞으로 명부 작성까지 하는 작업을 하겠다.

다케우치 상 숫자 쪽에 군인·군속 오키나와 3463명 동원된 숫자 명확한지 모르겠다. 특히 일본정부에 오키나와 평화공원 관련 각명비에 각명된 조선인에 대한 세부내역을 알아보기 위해 정보 공개 요청했다. 본적 등 상세정보 명부는 없었다.

일본정부는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 중 오키나와전(沖縄戦)에서 사망한 20만 명 중 조선인 1만 명이 죽었다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 안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3463명만 인정하고 있다.

강제동원 명부는 없다. 행방불명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일본정부는)이들 사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는 사망자 명부를 조사해 사망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400명을 전부 만났다. 대부분 각명했다. 일부는 거부했다. 오키나와 사람은 신청만 하면 각명해 줬다.

현 일본정부에 항의 등 시민운동을 통해 2017년 조선(한국)사람도 각종 제반 상황을 확인 후 오키나와 사람처럼 각명해 주고 있다.

- 일제강점기 한국인(조선인) 연구하게 된 동기?
▶4년 전 한국에 갔을 때 한의 비 건립이 영향을 주었다. 오사카 마메다상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조선 사람 명단 없었다. 신빙성 없었다. 이에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고 그동안 남편과 함께 하던 사업을 은퇴하게 돼 일제강점기 오키나와와 조선인에 대한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일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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