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 유적에서 펼쳐진 익산문화재 ‘야행’ 성료

▲ (사진=익산 왕궁리유적에 자리한 국보 제289호 왕궁리 5층 석탑위에 1,400년 전에도 떠있었을 한적한 달이 여름밤을 고즈넉하게 해주고 있다.)

(익산=국제뉴스) 홍문수 기자 =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 가 두고 맛둥(署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 卯乙抱遣去如.)

지금으로부터 1,400년전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년)인 서동과 신라 26대 왕인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선덕여왕의 동생)의 국경을 넘은 사랑노래로 잘 알려진 ‘서동요’다.

▲ (사진=서동과 선화공주)

백제 무왕은 어릴 적 서동(署童) 혹은 맛둥이라 불렸는데 신라 선화공주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공주와 인연을 맺기 위해 ‘선화공주가 남몰래 통정을 하고 밤마다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부르게 했다.

그러자 노래는 신라 곳곳에 퍼지게 되고 곧 이를 알게 된 진평왕은 크게 격노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쫓게 되는데, 귀양길에 오른 선화공주는 서동과 만나 결국 혼인을 하게 되고 백제왕후가 된다.

▲ (사진=하늘에서 바라본 왕궁유적(노란색 테두리 안쪽이 왕궁터이다))

왕위에 오른 백제 무왕은 그가 태어난 익산으로 천도하고 외곽 3m의 담장이 장방형으로 둘러싸인 약 12만㎡ 규모의 왕궁을 건립했다.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의 왕궁과 후대의 사찰유적이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왕궁 남측은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생활과 관련된 건축물이 배치되었고, 북측은 정원과 후원 그리고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사진=백제무왕과 왕후(선화공주))

또한 백제의 왕후가 된 선화공주는 무왕과 사자사로 행차를 하던 중 용화산 아래 큰 연못에 이르렀는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고 선화공주의 청에 의해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사찰을 세웠는데 이곳이 ‘미륵사’이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서탑) 해체 중 확인된 금판에서 미륵사 석탑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왕후인 사택적덕(백제귀족)의 딸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삼국유사의 서동설화에 의문이 제기됐다.

▲ (사진= 익산문화재 '야행'의 백미인 천년기원을 담은 탑돌이 행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륵사는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로 ‘3탑3금당’이라는 가람구조를 갖고 있는데 서탑을 조성한 이가 사택왕후라면 중앙탑과 동탑은 선화공주와 의자왕의 모친이 만든 탑이다는 설이 나오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기다 무왕의 부인이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일 수도 있다는 추정과 함께 내년부터 발굴 예정이면서 도굴된 채 그대로 남아있는 무왕의 부인 묘인 소왕릉의 실체 파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사진=익산시립국악원 단원들이 익산문화재 '야행'행사를 빛내기 위해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18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전북 익산 쌍릉(사적 87호)의 대왕릉에서 나온 인골은 키가 160cm-170cm인 6~70대의 건장한 남자 노인으로 620~659에 사망해 삼국사기 기록과 부합한다고 발표했다.

▲ (사진=익산시립국악원 단원들이 익산문화재 '야행'행사를 빛내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특히 대왕릉에서 나온 인골이 사실상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의 유골로 확인되면서 고대도성의 요건(왕궁, 국가사찰, 왕릉, 관방(성곽)유적)을 갖추고 있는 익산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 (사진=제30대 무왕의 어미가 과부가 되어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연못에 사는 용(龍과) 정을 통해 서동을 낳았다는 설화가 있다.)

사적 제150호로 지정된 미륵사지와 백제왕궁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확인된 익산 왕궁리 유적은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면서 2015년 7월 8일 백제왕도로서 진정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 (사진=익산시립무용단원들이 익산문화재 '야행'행사를 빛내기 위해 화려한 춤사래를 펼치고 있다.)

아울러 익산은 지난 1980년대부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등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한 결과 2004년 경주·공주·부여에 이어 대한민국 고도(古都)로 지정됐다.

삼국시대 유일한 궁궐터인 익산 왕궁리유적지에는 국보 제289호 왕궁리 5층 석탑이 백제의 기상과 기백을 자랑하며 우뚝 서있어 백제무왕과 선화공주가 거닐던 후원에서는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사진=익산시립무용단원들이 익산문화재 '야행'행사를 빛내기 위해 화려한 춤사래를 펼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에 걸쳐 유네스코 세계유산 왕궁리유적 일원에서 삼국시대 제30대 백제무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익산 문화재 야행'축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백제무왕은 아름다운 왕궁을 왜 익산에 지었을까?’라는 주제로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28개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 (사진=익산문화재 '야행'행사를 위해 흥을 달구고 있다.)

올해 처음 개최되는 익산문화재 야행은 익산의 역사성을 간직한 문화유산과 콘텐츠를 활용해 지역주민과 함께 ▶백제왕궁 후원 산책 ▶숨은 서동·선화찾기 ▶고도육성 주민협의회의 ‘꽃등 만들기’ 등의 각종 체험프로그램과 무형문화재의 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함께 한여름 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 (

특히 백제의 혼이 깃든 궁터에서 옛 선왕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어 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고 문화재가 가진 문화콘텐츠로써의 가치 및 활용가능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익산 문화재 야행' 행사는 오는 10월에 한 번 더 진행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