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가지 캠페인으로 세상을 바꾸다. 사회공헌 캠페인 포윅스(4Weaks)

안녕하세요, 김종훈 대표님, 정상규 대표님.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포윅스 회사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어떤 회사인가요.

(정상규)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포윅스는 "For Weaks" 즉, 약자를 위한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회사입니다. 여기 계신 김종훈 대표님은 기획 컨설팅 분야를 맡고 계시고 저는 교육 콘텐츠 분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회사는 크게 자산관리, 기획 컨설팅, 교육콘텐츠 개발 등을 다루며 자산관리는 포윅스의 다른 영역인 "Four Weeks" 즉, 4주간의 자산관리솔루션을 담당하는 김태형 대표님이 맡고 계십니다.

창업배경이나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사회에 이바지하는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상규)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사회적 의의가 있는 일들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저 같은 경우 미국에서 NGO를 만들었던 경험과 ‘아틀리에포퓨처’ 라는 사회적기업을 일전에 만들었습니다.

(김종훈) 저는 독도강치(독도의바다사자)를 알리는 캠패인, 세계장애여성을 위한 캠패인, 중증환자를 위한 봉사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을 해왔어요.  클럽, 페스티발, 문화 이벤트, 기업 브랜드 컨설팅 등 기획전문가로써 현재까지 15년간 수 많은 프로젝트를 담당 해 왔습니다.

저희가 서로 분야는 달랐지만 내 주변사람들을 돕고 나아가 공유가치를 창출해 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이바지하려고 서로 노력 해왔습니다.

(정상규) 겉으로 보이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사실은 똑 같은 일을 해 왔던 거에요. 만나자마자 서로의 가치를 알아봤죠. (김종훈) 저는 아무것도 못 느꼇어요 (웃음)

이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네요. 왜 사회공헌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정상규) 저희 둘다 외아들이에요. (미소)

-네? 그게 무슨 관련이..

(정상규) 어릴 적부터 저희는 많은 것들을 당연시하고 누리며 살아왔어요. 그때는 몰랐죠 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걸요.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리셨어요. 그때 저는 밴드부 보컬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모든걸 접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내 사람을 지키려면, 내 사람을 보호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경찰대학교에 지원을 했어요. 본고사도 치뤘고 많은 공부를 했죠. 나중에 미국에 갈때 당시 본고사를 준비하며 외웠던 영어 단어가 미국 수능 단어와 많이 겹쳐서 공부하는데 수월했던 기억이 나요. 20살의 나이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도착했는데 처음 제가 겪은 것은 지독한 인종차별이었어요. 그때 처음 느꼈죠. 한국에서 내가 고민해왔던 입시, 주변의 시선 이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사소한 문제였는지를요. 정작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고 있던거에요. 자중지란 그 자체였죠. 그때 처음 국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당시 수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세상이 자본의 이치로만 돌아가는 것과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 저는 조금 불편했어요. 돈 버는 귀신이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 할 수 있는 직업들은 없는 것인가를 자연스레 고민했고 그러던 때 미국에서 NGO를 만들게 되었어요. MASA (Mathematics and Science Association) 이라는 NGO 였는데 인종에 상관없이 한 테이블에 서로 모여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무료 멘토링과 튜터링을 해주는 단체였어요.

당시 미국에서는 1시간에 20불씩받고 단순히 숙제만 풀어주는 것이 튜터링이였거든요. 저는 그런 환경과 현실이 너무 싫더라구요. 대학생 시절 NGO를 처음 만들기로 선택한 그 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김종훈) 저는 어릴 적 유복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어요. 저희 아버지 집안은 예전 명동에 있던 코스모스 백화점을 운영하셨어요. 어머니집안은 부천에서 유명한 유지이셨습니다. 집안 어르신들 가르침 속에서 저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중요시하며 자랐어요.

어릴 적부터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이들 비지니스가 잘될 수 있을까 고민을 20여년 해왔는데 그렇게 삶을 살아오니 어느덧 실력만큼은 자부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획자가 되어 있었어요. 결국 사랑 안에서 일을 행함이 곧 비지니스고 기획이 되어야만 올바른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철학이 생겼죠. 이러한 찰나에 기적같이 같은 생각 선에서 미래를 보는 분들과 인연이 되어 포윅스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두 대표님 모두 외국에 오래 머무신 것 같아요

(김종훈) 저는 고등학교를 칠레에서 나오고,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습니다. 버지니아랑 워싱턴D.C에 오래 살았습니다.

(정상규) 김종훈 대표님은 언어에 재능이 있으세요. 저번에 칠레 여성 2분이 지나가는데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스패니쉬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대표님들이 생각하시는 사회공헌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사회공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에요. 한 두 번으로 끝나는 단발성 사업들은 오히려 안하느니만도 못한 경우가 많아요. 가령 장애우 봉사활동이나 위안부 피해할머니를 돕겠다고 쉽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해요. 어줍잖은 의협심은 오히려 큰 상처를 남기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을 보면 이분이 얼마나 오랜 시간 사회적의의가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왔고, 어떠한 프로젝트로 주변 사회에 기여를 해왔는지를 봐요. 기업에서 경력과 포트폴리오를 중요하시하는 것과 비슷해요.

남들과 다른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다면.

(김종훈, 정상규) 캠페인 사업.

저희는 99개의 캠페인을 통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변화 시킬거에요.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이러한 사람들, 이러한 기업들이 있다는 것 조차 몰라서 감사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이나 기부후원에도 ‘아 이러한 방법으로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많아요. 가령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버튼만 눌러도 독거노인분들을 도울 수 있다면 큰 노력이 필요한 행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매일매일의 선행이 문화가 될 거에요. 크리에이티브의 영역과 사회공헌의 영역을 연계하다보면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있다면.

(정상규) "선한 영향력, 노블리스 오블리제"

(김종훈) "Save Korea, Save the World"

10년 뒤 모습,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1년 12개월, 12개의 캠페인, 8년 96개월, 96개의 캠페인 저희는 100개의 캠페인을 통해 선한 영향력으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열정을 바치는 영웅들이 있고 남들이 꺼려하는 힘들고 기피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책임감을 갖고 수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정의감과 박애주의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름다운 분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분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며 더 사람냄세나는 세상, 더 따듯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캠페인이 99개가 될 때, 마지막 100번째 캠페인은 국민 여러분들이 저희를 위한 캠페인 하나를 만들어 주기를 꿈꾸어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애국'을 실천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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