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학 칼럼리스트


안병학 칼럼리스트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샛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훌쩍 지나간 모양새다. 비 내린다는 예보에 어제 배추밭에 추비를 주었건만 바람이 밭고랑을 타며 비료알갱이만 이리저리 흩어지고 구슬 구르듯 굴러간다.

하늘을 쳐다보건만 시커먼 구름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서방으로 흘러가고 듬성듬성 파란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 보일 뿐이다.

어른들은 아직도 "왜풀" 이라 칭하는 "개망초" 가 군락을 이뤄 바람에 흔들 춤을 춘다. 앙증맞은 작은 꽃이 소담스러울지언정 농부들에겐 제거해야 할 잡풀에 지나지 않는다.

달개비와 강아지풀도 제법 고개를 내밀어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달개비는 "달그상다리"라는 명칭을 가진 농민들이 제일 귀찮은 잡풀로 끊임없이 제거해도 되살아나는 질긴 생명력을 가진 암덩어리 같은 존재다.

"오늘은 비 오긴 애시당초 글러 먹었구먼!

뒷집 아저씨의 푸념이 새벽공기를 타고 예리하게 귓전을 때린다.

"그러게 말예요! 어제 비료는 뿌려 놓았는데 비에 젖어 스며들지 않으면 배추 뿌리가 비료를 빨아먹기 힘들어 할 텐데요?"

"왜 안 그렇겠어! 저번 오월엔 때 아닌 장맛비가 며칠을 쏟아 붓디 만 ! 비가 좀 나누어 오면 누가 뭐라 하나! 한꺼번에 쏟아 붓고는 진작 오라고 할 땐 하늘이 꿀 먹은 벙어리니 말이야! "

아직은 잎이 야들야들한 배추와 양배추 그리고 여름무의 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름기가 약하면 야채는 성장을 멈추고 결실이 더디어 잎이 두터워 질겨지면 제값을 받기란 요원한데 적기에 비가 내릴 모양세가 아닌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차피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농작물에 충분히 수분공급을 해 주어야 한다. 이젠 이런 스프링클러 등 양수장치가 없으면 야채를 비롯한 밭작물의 농산물을 팔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듯, 그런 시대가 되었다.

농산물 중간상인들 역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는 농가의 야채를 선호하지만 이런 장치가 없는 농가의 농작물은 쳐다보지도 않는 형국이다. 산골의 특성상 개울물이나 지하수를 이용해 양수를 하므로 계곡물과 지하수 역시 덩달아 부족하여 가뭄의 피해를 극대화 할 수밖에 없어 예민해진다.

밭둑가의 하얀 찔레꽃은 아직도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 아침바람에 꽃이 흔들려 하얀 꽃을 수북이 쏟아 냈지만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어떤 노래가사엔 '찔레꽃 붉게 피는 ...."으로 시작을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붉은 찔레꽃은 구경을 한 적이 없다. 남쪽 나라엔 붉은 찔레꽃이 있는지 몰라도......

어디선가 닭의 훼치는 소리가 들린다. 네 시 무렵이면 닭이 아침소리를 내는데 저 닭은 오늘 늦잠을 자고 제 역할을 한답시고 하는 모양새다.

요즘은 꿩의 개체수가 부쩍 늘어 "꿩 꿩" 소리를 내며 푸드덕 거리는 아침이다. 장끼와 까투리가 쌍을 이루어 먹이를 찾는 아침단상이 참 밝다. 행여 부화를 하여 어린 꺼병이(꿩의 새끼)의 먹이를 공동으로 찾아 나섰을까? 참 부지런 하다는 느낌은 새끼를 키우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화임을 느낀다. 자연이 그런대로 자기정화를 통해 순환성을 가짐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엔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동네로 이주하는 도시민들의 집짓기가 분주한 모습이다. 귀농과 귀촌의 풍경은 소규모의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펜션사업이나 은퇴 후 맑은 공기가 바른 산소를 제공하는 이 지역을 둘러보고 그대로 머무는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들과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 종종 보이지만 도시에서 경쟁하고 이웃과 경계하던 모습을 쉽사리 지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마을 한가운데 높이 솟은 전나무, 잣나무 숲을 이룬 폐교 터에 발걸음을 옮겨본다. 그 옛날 참새의 소곤거림이 들리는 듯 귓가에 바람소리와 함께 스쳐간다. 학동수가 급격히 줄어 우중충하게 터만 남고 낡은 건물 몇 채가 학교이었음을 짐작하게 할 뿐 아동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오직 하나 반공 이데올르기 교육의 표상 이었던 어린 소년의 책보를 꿰고 있는 동상만이 모습만이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할 뿐이다.

비가내리면 파종을 하려고 로터리를 쳐둔 밭엔 흙먼지만 날린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어차피 양수기를 동원하여 충분하게 물을 공급하고 난 후 파종을 하여야 한다. 아랫말 김 씨의 여름무밭은 이미 갈아엎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무씨가 가뭄에 발아가 되지 않은 채 타들어가 할 수 없이 대체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다.

농업은 자연이 투자한다. 자연을 믿고 자연의 소리에 맞추어 성과를 내고 이윤을 내야 한다. 그래서 지수화풍의 근본을 저버릴 수 없다. 만물을 생성 시키는 지와, 만물을 성장시키는 수와, 만물을 성숙시키는 화, 만물을 변화시키는 풍이 융합의 요소를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농사의 근원이다.

바람 부는 언덕에 오르지 않더라도 작은 먼지를 일으키고 솔잎의 향기를 느끼며 성장의 속도를 내는 섬세한 농작물의 들녘은 무언가 바른 희망을 잉태한다.

내릴 때가 되면 비는 내려 주겠지만 마음이 애타고 있을 때 내려주는 비가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줄기 감사를 느끼는 것이 바로 자연을 섬기는 농사꾼의 마음이다.

-안병학 칼럼리스트 약력- 강원 평창출생,농식품 컨설런트,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며,대표저서로는 <안병학의 농식품이야기>,<사람사는 세상에>,<이야기가 있는 마당>,<덕거리 사람들>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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