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보훈청 복지과 전혜정

▲ (사진제공 = 서울지방보훈청) 서울지방보훈청 복지과 전혜정

4월은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싹들이 황무지처럼 척박하고 황폐한 죽은 땅을 뚫고 움트기 위해서 온갖 역경과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잔인한 달이다.

이러한 역경과 고난의 4월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너무나도 잘 투영되고 있으니 올해로 58주년을 맞은 4·19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 2월28일 당시 민주당 후보의 유세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대구에서 내려진 등교령에 분노한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살리자”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3ㆍ15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시위 도중 실종된 김주열 군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증폭되었다.

그리고, 4월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 후 귀교하던 고려대생들이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는 전 대학생들의 총궐기로 이어졌고 '피의 화요일'로 불린 4월19일에 대학생은 물론 중·고교 학생들을 비롯 10만 여명의 서울시민이 시위에 참가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타도를 외치게 되었다.

결국 4월 21일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이 물러났고, 4월 26일 오후 2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한 4·19혁명이 완성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결과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입은 직후였고, 남북은 완전히 분단되었으며, 사회적·경제적 미성숙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 속에 있었다.

2018년도인 지금도 헌법 개정을 통해 권력체제를 더욱 집중시킨 공산주의 국가 중국, 십 수년째 1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등 우리나라 주변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비민주적인 체제를 가진 수많은 국가들이 존재하는 상황을 볼 때, 민주주의를 실현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196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의에 항거하여 싸워냈던 4·19혁명은 황무지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겪어내야 했던 혹독한 과정이요, 민주주의의 싹을 피우게 된 밑거름이었다.
 
올해는 4·19 혁명이 있은 지 58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어둡고 치욕적인 일제 식민시대를 이겨내고 광복을 맞이하였고, 6·25전쟁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분연히 일어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하였다.

그리고 여러 부침을 겪고 있긴 하지만 정의가 살아 숨쉬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걸음 더 전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58년 전 4·19혁명에서 발아된 민주주의의 싹이 정의롭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꽃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국민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기원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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