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를 능가하는 행촌 '이암'의 친필 서첩

(안동=국제뉴스) 김용구 기자 =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최근 고려말 송설체의 대가인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 선생이 쓴 '대방광불화엄경'2점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대방광불화엄경 표지.(사진=한국국학진흥원)

이암은 고려시대 학자이자 정치가로 감찰대부를 지낸 이존비의 손자로, 처음 이름은 군해(君侅)이며 후에 이름을 암(嵒)으로 고쳤다.

고려시대 고성이씨 가문은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누대에 걸쳐 공신과 재상을 지낸 문벌가이다.

이암은 농학에 갚은 관심을 가져 원나라에서 '농상집요(農桑輯要)'라는 농서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직은 좌정승을 거쳐 문하시중까지 올랐는데, 홍건적이 침입해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아들과 함께 왕을 호종했다.

특히 고려 말기 최고의 명필로 알려져 있으며, 왕희지의 글씨를 바탕으로 결구가 유려한 서체를 구사했다.

      발문-보현행원품.(사진=한국국학진흥원)

그의 대표적인 글씨로는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의 탁본이 전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한 '대방광불화엄경'과 '행촌친필'은 이암이 직접 쓴 화엄경의 필사본 서첩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의 제26권 가운데 일부인 십회양품(十回向品) 제25이며, '행촌친필'은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한 부분이다.

크기는 각각 41.3×14.8㎝, 24.8×13.0㎝다.

     대방광불화엄경-십회양품.(사진=한국국학진흥원)

'대방광불화엄경' 제26권의 일부를 쓴 사경의 특징은 1행 17자이며, 절첩본으로 1면에 6행씩 적었다.

현재, 앞뒤 표지와 본문 4면이 남아 있다.

함차(函次)는 없으며,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본 중 제26권, 십회양품(十回向品) 제25의 내용으로 파악된다.

이 자료는 앞뒤 표지화는 4개의 연화문이고, 본문은 백지에 묵서(墨書)이다.

4개의 연화는 금니로, 연화를 둘러싸고 있는 당초 줄기 잎들은 은니로 장식돼 있다.

표제 제첨의 위·아래 모두 앙화(仰華)로 장식이 되어 있다.

뒤 표지화의 경우, 앞 표지화의 가장 위쪽에 배치된 연화의 형태를 한 연꽃이 4개가 그려져 있는데, 방향이 모두 아래쪽을 향하고 있어 이 시기 흔치 않은 사경첩이다.

이 자료는 표지에 '행촌친필(杏村親筆)'이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내용은 '대방광불화엄경' 가운데 '보현행원품' 중 일부로 확인된다.

감지에 은니(銀泥)로 쓴 서첩은 전부 10절첩으로 구성됐지만, 현재 사경이 남아있는 것은 2면 뿐이며, 1행 17자다.

맨 앞부분에 후손 이주정(李周禎,1750∼1818)이 짓고 쓴 발문이 붙어 있다.

     행촌친필 표지.(사진=한국국학진흥원)

표제인 '행촌친필' 네 글자는 이암의 친필임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말기 송설체라 불리는 조맹부의 필법이 시대를 풍미했다.

행촌 이암은 조맹부 서체의 진수를 체득해 굳세고 아름다운 서체를 완성했다.

그의 글씨는 조선 초기 신진 유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안평대군 이용에 와서 꽃을 피웠다.

이암의 서체는 조맹부체의 연미한 단점을 보완, 필획이 굳세고 장중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발견된 서첩은 정성들여 사경(寫經)한 작품으로, 그의 친필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다.

한편, 한국국학진흥원은 행촌 이암의 친필 서첩 2점을 오는 30일 개막하는 고성이씨 문중 특별전 '은둔과 개혁, 군자의 삶'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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