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부산 해동용궁사

[글/사진 유영미 여행작가]

가을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붉어가는 계절을 잔뜩 머금은 낙엽들이 무채색 도로 위에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쌓여간다. 지난여름 온 힘을 다해 열매를 여물었을 그들의 노고가 느껴져서일까. 바싹 마른 이파리들이 툭툭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짠해진다. 그렇게 거리의 나무들은 서둘러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문득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다이어리 속에는 여물기는커녕 시작도 못 하고 잠들어있는 올해 목표들이 빼곡하다. 갑갑한 마음에 동화 속 램프의 요정을 소환해 소원을 빌며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이럴 땐 부산에 위치한 해동용궁사로 향하는 건 어떨까. 한가지 소원을 꼭 이뤄준다는 해동용궁사에선 왠지 일상 속 마법이 일어날 것만 같다.

▲ 바닷가 절벽 위의 해동용궁사

파도가 더하는 독특한 음색 

해동용궁사는 동해에 자리 잡은 관음도량이다.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4대 관음성지로 불리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곳은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보문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돼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이 중창했다. 이후 1974년 정암이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던 중,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본 뒤 현재의 해동용궁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108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닷속 용궁으로 들어가는 묘한 기분마저 든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불경 소리가 바람과 뒤섞여 대숲 사이를 흐르는데,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는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음색이다.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귓가에 음표를 그리며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자 넘실대는 푸른 바다 위로 해동 용궁사의 전경이 펼쳐진다. 용문교를 건너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만복문까지 지나면 경내로 들어간다.

▲ 해동용궁사 해수관음대불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

경내에는 용 한 마리가 빨간 여의주를 들고 하늘을 향해 강한 기운을 받치고 있는 듯하다. 은은히 퍼지는 불경 소리를 뒤로하고 단일 석재로는 국내 최대 석상인 해수관음대불을 보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른다.

인자하게 바다를 굽어보는 관음대불 앞에는 바라는 것을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떤 소원을 품고 이곳에 왔을까. 욕심부리지 않고 딱 한 가지만 골라 두 손을 모은다. 이곳에선 국적도 종교도 초월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에 품은 어떤 것을 기도하는 모습에 수다를 떨던 관광객도 잠시 숙연해지곤 한다.

▲ 바다를 따라 걷는 해동용궁사 해변 산책길

바다를 맞잡고 걷는 해변 산책길

해동용궁사에 간다면 해변 산책길을 걸어봐야 한다. 해동용궁사로 향하는 108계단의 중간쯤에 일출암과 해변산책길로 향하는 샛길이 있다.

해동용궁사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절'로 새해에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일출암을 지나 국립수산과학원으로 향하는 빨간 목재 다리를 건너면 해변 산책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바다가 길동무가 되어줘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푸른 바다가 내민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걸으면 마음마저 청정해질 거다. 산사(山寺)가 아닌 바닷가에 위치한 해동용궁사를 가야 할 또 다른 이유다.

* 작가 소개

문장 속을 걷고 길을 밟으며, 지나는 풍경에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행복했다. 책과 여행은 언제나 쉼이었다. 오늘도 글을 써 내려 가듯 세상에 발을 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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