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노랗게 물들이는..
[글.사진 = 여행작가 박성우]
난초는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식물이다. 물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면 쉽게 탈이 나고, 수분이 부족하면 바로 시든다. 또 청결해야 해서 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선 특유의 기품을 유지해 줄 수 없다. 그만큼 예민하고 까다로운 화초인데 이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키우는 이의 애정이다. 아무리 주변 환경을 자라기 좋게 최적화시켜도 사랑이 없다면 난초는 빛을 잃어간다. 수시로 어루만져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난초만큼의 성의는 아닐지 몰라도 늘 보듬어줘야 한다. 강원도엔 이처럼 나무를 따듯한 시선으로 돌보는 공간이 있다. 홍천의 은행나무숲이다. 지금 그곳엔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를 위해 10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애정으로 자라는 은행나무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웃음이다. 물론 웃지 않는다고 해서 애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웃는다고 해서 다 관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보편적인 예를 든 것이다. 그만큼 밝게 웃는 얼굴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지난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은행나무숲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 입구에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뻗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날린다. 그 모습은 꼭 누군가가 환하게 웃어주는 느낌이다. 나뭇잎은 지난 일 년 동안 받은 사랑을 샛노랗게 뽐내고, 바닥에 떨어진 단풍은 폭신폭신한 양탄자가 되어 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한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소중하지만, 이곳의 은행나무는 뭔가 더 특별하다.
이유는 숲의 역사에 있었다. 은행나무숲은 숲 주인이 30여 년 전에 아픈 아내를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내의 건강을 생각하며 가꾼 나무들인데 그 정성의 크기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내를 돌보듯 한 그루 한그루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 기운을 받은 나무들이 지금의 숲을 이루고 있다.
일 년 중 한 달만 들어갈 수 있는 곳
홍천 은행나무숲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주인 부부의 정원이었다. 과거에 심었던 나무들이 가을만 되면 장관을 이루자 입소문을 타게 됐다. 주인은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10월 한 달만 문을 열어 광경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매해 10월이 되면 마을은 바쁘다. 노란 단풍을 보러 온 관광객을 위해 동네 사람들은 숲 입구에 작은 장을 열어 특산품이며 갖가지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아내를 위해 조성했던 숲이 이젠 마을의 작은 축제가 됐다.
은행 나뭇잎이 10월의 바람에 날린다. 12시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처럼 단풍잎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진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시라. 내년 가을에 일 년만큼의 사랑을 받아 더욱 짙어진 은행나무숲을 볼 수 있으니.
*작가 소개 및 약력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한다. 이유는 맛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서다. 단맛, 쓴맛, 신맛 안에서 나만의 맛을 찾는 게 즐겁다. 글도 그렇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개성을 추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