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노랗게 물들이는..

[글.사진 = 여행작가 박성우]

난초는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식물이다. 물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면 쉽게 탈이 나고, 수분이 부족하면 바로 시든다. 또 청결해야 해서 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선 특유의 기품을 유지해 줄 수 없다. 그만큼 예민하고 까다로운 화초인데 이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키우는 이의 애정이다. 아무리 주변 환경을 자라기 좋게 최적화시켜도 사랑이 없다면 난초는 빛을 잃어간다. 수시로 어루만져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난초만큼의 성의는 아닐지 몰라도 늘 보듬어줘야 한다. 강원도엔 이처럼 나무를 따듯한 시선으로 돌보는 공간이 있다. 홍천의 은행나무숲이다. 지금 그곳엔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를 위해 10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 은행나무숲

애정으로 자라는 은행나무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웃음이다. 물론 웃지 않는다고 해서 애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웃는다고 해서 다 관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보편적인 예를 든 것이다. 그만큼 밝게 웃는 얼굴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지난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은행나무숲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 입구에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뻗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날린다. 그 모습은 꼭 누군가가 환하게 웃어주는 느낌이다. 나뭇잎은 지난 일 년 동안 받은 사랑을 샛노랗게 뽐내고, 바닥에 떨어진 단풍은 폭신폭신한 양탄자가 되어 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한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소중하지만, 이곳의 은행나무는 뭔가 더 특별하다.

이유는 숲의 역사에 있었다. 은행나무숲은 숲 주인이 30여 년 전에 아픈 아내를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내의 건강을 생각하며 가꾼 나무들인데 그 정성의 크기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내를 돌보듯 한 그루 한그루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 기운을 받은 나무들이 지금의 숲을 이루고 있다.

▲ 노란단풍

일 년 중 한 달만 들어갈 수 있는 곳

홍천 은행나무숲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주인 부부의 정원이었다. 과거에 심었던 나무들이 가을만 되면 장관을 이루자 입소문을 타게 됐다. 주인은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10월 한 달만 문을 열어 광경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매해 10월이 되면 마을은 바쁘다. 노란 단풍을 보러 온 관광객을 위해 동네 사람들은 숲 입구에 작은 장을 열어 특산품이며 갖가지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아내를 위해 조성했던 숲이 이젠 마을의 작은 축제가 됐다.

은행 나뭇잎이 10월의 바람에 날린다. 12시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처럼 단풍잎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진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시라. 내년 가을에 일 년만큼의 사랑을 받아 더욱 짙어진 은행나무숲을 볼 수 있으니.

*작가 소개 및 약력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한다. 이유는 맛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서다. 단맛, 쓴맛, 신맛 안에서 나만의 맛을 찾는 게 즐겁다. 글도 그렇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개성을 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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