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여미현 여행작가]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 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 곳으로 찾아오라던…. 」

 

1970~80년대에 통기타의 선율에 맞춰 노래했던 가수 이연실. 그녀의 여리고 맑은 목소리가 기타줄 위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목로주점> 중 일부이다. 요즘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 ‘멋드러진’이란 단어가 가사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노래에는 오래되고 짙은 향수가 묻어 있다. 이연실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써내려가듯 노래를 불렀다.

오랜 친구여, 그곳으로 찾아오시라. 추억이 짙게 깔린 그곳으로 오시라.

지금 내 옆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난 이곳으로 찾아오라고 하고 싶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 켜켜이 쌓인 세월과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 백리(里), 천리(里), 만리(里)로 이어진 곳, 천리포 수목원으로 말이다.

▲ 수목원 안의 연못 주변 풍경

 

신의 비밀정원으로 불렸던 곳

미 해군장교로 한국을 처음 찾았던 칼 페리스 밀러(한국명 민병갈)는 한국의 풍광과 사람들의 인심에 이끌려 충남 태안 지역에 정착했다. 그는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에 나섰고, “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이곳을 가꾸는데 사용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의 귀한 수목들이 그의 바람처럼 정원과 숲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으나 점차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지금은 누구나 사시사철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수목원 내 펜션을 이용할 수 있다.

▲ 수목원 내 쉼터에서 바라본 천리포 해수욕장

 

서로 다른 우주가 이루는 세상

수목원 내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어울리며 살아간다. 수국이 바라보는 세상과 목련이 꽃피우는 세상, 연못 속 개구리가 외쳐대는 세상은 서로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 수국과 목련과 개구리가 만든 세상 덕분에 수목원은 오랜 시간을 덤덤하게 견뎌낸다. 사람도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산다고 한다. 그 우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다른 공간에서 산다. 다른 공간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또한 다를 것이다. 만나지 못한다고 사라지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수목원에서 은은한 향기처럼 퍼져 나오듯이 오래 만난 사람들끼리는 닿지 않아도 전해지는 손길이 있다.

목로주점 백열등이 그네를 타듯이 오래된 친구와 맞잡은 손도 그네를 탄다.

▲ 수목원 내 조성되어 있는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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