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

[글/사진 유영미 여행작가]

계절을 넘어가는 바람이 코끝에 머물렀다. 푸른 밤하늘은 고요함을 넘어 적막했다. 그 외로움을 달래듯 하늘엔 별이 친구가 됐다. 맑은 하늘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많은 별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늘이 비로소 완성한 별빛의 향연이었다. 일제 강점기 별을 노래한 윤동주 시인 역시 그랬다. 후배 정병욱이 없었다면 그는 세상에 빛을 밝히지 못한 채 암울한 역사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윤동주의 시를 고스란히 품었던 소중한 공간,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 위치한 '정병욱 가옥'. 그곳엔 시인 윤동주와 그를 빛낸 정병욱의 각별한 우정이 함께 서려 있었다.

▲ 일제 강점기 윤동주 유고 시집이 보존됐던 정병욱 가옥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은 1925년에 지은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점포형 주택으로, 일제 강점기 윤동주 시인 유고 시집의 친필 원고가 보존됐던 곳이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시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후배인 정병욱에게 친필 원고를 건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44년 정병욱은 강제 징병으로 끌려가기 전 광양의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시집 원고를 소중히 보관해줄 것을 유언처럼 당부했다.

해방과 함께 다행히 정병욱은 살아 돌아왔지만, 윤동주가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복역하던 중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윤동주는 떠났지만, 그의 유고 시집은 정병욱 가옥 마룻바닥 아래 무사히 보존됐다.

정병욱은 1948년 마침내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시인의 유고 복사본

'내가 평생에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병욱의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중에서)

▲ 윤동주 시인과 후배 정병욱 (정병욱 가옥의 안내판 속 사진)

올해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까지 그의 후배이자 마음이 통하는 글벗이었던 정병욱의 힘이 컸다. 정병욱은 윤동주가 창작에 몰두하던 시절 함께 하숙하며 조언을 주기도 했는데,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 등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쓰였다.

정병욱은 유고 시집 발간 이후에도 윤동주와 그의 문학을 널리 소개하며 '윤동주 시비' 건립 등 기념사업에도 앞장섰다. 550리를 내달린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는 광양 망덕포구. 윤동주의 시를 품었던 정병욱 가옥엔 여전히 그의 시혼(詩魂)이 떠다니는 듯했다. 그곳에서 밤하늘을 보며 '별 하나에 추억'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 작가 소개

문장 속을 걷고 길을 밟으며, 지나는 풍경에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행복했다. 책과 여행은 언제나 쉼이었다. 최근 문학기행서 <소설, 여행이 되다>를 공저로 출간했다. 오늘도 글을 써 내려 가듯 세상에 발을 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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