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바리톤 정경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영광을 누리던 과거 모습 그대로 현대 사회에 던져진 오페라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베르크의 ‘보체크’ 이후 신작 오페라들이 선을 보였지만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잊혀져 갔다.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지난 걸작 오페라들이 지닌 작품성과 음악성을 능가하거나 압도할 만한 작품이 탄생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사상, 세계관, 철학, 통치체제, 국경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이 격변하는 시기였기에 무언가를 ‘정답’ 혹은 ‘명작’이라고 정의 내리기 까다로워진 탓도 있었다.

긴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고전 오페라 작품들 앞에는 현대 사회를 맞아 극복해야 할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는 바로 무대에 오를 과거의 작품과 객석에 앉을 현시대 간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오늘날 명작으로 불리는 오페라들은 당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당 시대를 살아가던 작곡가, 극본가의 문제의식이 결합되어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객석을 메울 사람들도, 문화와 시대적 상황도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로 인해 극본이나 음악보다는 ‘작품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연출의 방향이 현대 오페라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전통을 고수할 것인가 혹은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기존 작품에 현대라는 배경을 입혀 파격적으로 재해석하는 경우, 이제껏 고전으로만 생각했던 오페라에서 스마트폰이나 클럽 의상, 유명 외제차 등 현대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페라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삼되 원작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을 현대로 바꾸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격적인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 독일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바람둥이 악당 돈 조반니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존의 결말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거세를 당한다. 연출가 페터 콘비츠니가 만들어낸 이 연출은 금빛 실내복 가운을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조반니와 항상 말쑥한 정장과 제복 차림을 갖춘 주변 인물들 간의 대비를 극대화시켰다.

이는 사회규범과 도덕과는 반대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어떻게든 길들이려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의 사회에까지도 팽배한 사회적 억압을 상징했다. 결국 조반니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거세된 뒤 양복 정장을 챙겨 입는 평범한 남자로 변신하는 의미심장한 결말을 맞이한다.

2007년 네덜란드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역시 주인공 피가로와 수잔나를 1960년대 유스호스텔에 묵어가는 젊은이들로 그려냈다. 유럽연합 대사로 그려진 알마비바 백작의 바람기에 근심 걱정이 많은 로지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시름에 가득 찬 아리아를 부른다.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무대 구성에도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귀족들의 저택 등 배경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던 세트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배경 구성이 시도되었다. 전체적으로 텅 비어 있되 간단한 소품이나 의자, 덧마루 등 간단한 무대 구조물을 강조하는 무대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극 중 배경이 전환되어도 소품의 위치 정도가 바뀌는 정도로 무대를 완전히 갈아엎는 등의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기술력의 발달에 힘입어 극 중 분위기의 변화는 조명의 색감이나 조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대 오페라의 흐름은 연출가의 권한을 지휘자보다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성악가 선정이나 리허설 등 오페라 제작과정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는 사람은 지휘자였다. 그런데 오페라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현실과 이를 재해석해야 할 연출가의 역할이 막중해지면서 오페라의 중점은 음악 자체보다 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연출가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재해석을 출연진, 연출진과 공유하면서 작품을 재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 현대 오페라, 각색의 자유는 어디까지

현대 오페라가 기존 작품의 재해석을 적극 받아들였음에도 객석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모든 재해석과 각색된 내용을 무작정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한 이러한 재해석된 내용이 어디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 제시도 어려웠다.

일례로 프랑스의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크의 작품은 파격적인 해석으로 인해 법정 다툼까지 번질 정도였다. 1957년 초연한 풀랑크의 작품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가 2010년 바이에른 오페라단의 연출로 다시금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총연출을 맡은 오페라 감독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는 기존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재해석을 다소 과도한 범위까지 적용하게 된다.

본래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당시 카르멜회 수녀가 되기로 결정한 젊은 귀족 여성 블랑슈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블랑슈는 수녀원장과 면접을 통해 수녀원에 들어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가들의 종교 탄압이 시작되고, 수녀들은 함께 순교를 맹세한다. 이로 인해 결국 수녀들은 혁명 정부에 의해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원작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의 결말은 그 여운과 표현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단두대의 서슬 퍼런 날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녀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점차 줄어드는 합창 소리는 관객들을 비극적 감상과 섬뜩함에 젖어들게 했다. 절정부에 다다르면 주인공이 라틴어 찬가를 부르면서 단두대 계단을 올라가 죽음을 맞이한다.

연출가 드미트리는 우선 극의 배경을 현대로 뒤바꾸었다. 또한 결말부가 전개되는 배경은 단두대 대신 수녀들을 가두어 가스를 살포할 창고로 바뀌었다. 문제는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였다. 새로이 재해석된 작품에서 창고에 갇혀 최후를 기다리던 수녀들은 주인공 블랑슈에 의해 구출된다.

기존 작품에서 단두대의 공포를 강조하던 음악은 구출 장면을 보다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결국 새로운 작품에서 주인공인 블랑슈는 수녀들을 모두 구하고 창고에서 일어난 폭발에 휩싸여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해석에 작곡가 풀랑크의 유족들은 저작인격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2014년 파리 지방법원은 피고의 무대 연출이 작곡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이것으로 연출가의 막강한 권한이 인정받는 듯 보였다.

이러한 결정에 반발해 항소를 제기한 풀랑크의 유족들은 파리 항소법원을 통해 기존 판결을 뒤집고 승소를 거두게 된다. 연출가가 오페라의 음악과 대사를 바꾸지 않았더라도 결말을 바꾼 행위는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고전 오페라를 현대에 다시금 살려낸다는 것.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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