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머무는 그의 연주는 시(詩)가 되고 잔잔한 강이 되어 흘렀다.

▲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리사이틀 프로그램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서울=국제뉴스) 강창호 기자 = 당 타이 손(Dang Thai Son), 그가 나고 자랐던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그만 가면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하롱베이가 있다. 그 곳은 3000여 개의 섬과 기암이 바다 위로 솟아 있는 자연의 기묘한 아름다움은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누구나 시를 읊을 정도로 시상(詩想)이 매우 풍부한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어쩌면 그런 곳에서 당 타이 손과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 전후 베트남과 자신의 음악 활동에 관하여 자신은 행운아라고 말했다. 목숨이 담보 된 전쟁의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가장 훌륭한 보호자이자 선생님이었으며 어머님이 들려 주시던 쇼팽의 음악은 자신에게 생명 같은 피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되는데 있어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훗날, 아시아의 전쟁 소년은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게 된다. 당시 쇼팽 콩쿠르에 나왔던 그의 연주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감동이 가득히 차 오른다. 그런 그가 수 십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긋한 중년기에 이르러 우리 앞에 나타났다.

▲ 당 타이손(둘째 줄 왼쪽 넷째)이 1993년 베트남 중부 쑤안 푸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1972년 '하노이 폭격' 때 이 마을에 피신해 있었다. 당 타이손은 종전 4년 만인 1980년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사진= 블로그에서 캡처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작성자 Herman)

독특한 피아니즘을 보여준 당 타이 손!

그의 피아니즘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했다. 온몸에 힘을 뺀듯한 자세와 소스테누토 페달과 서스테인 페달을 매우 능숙하고 유연하게 다루는 정교한 페달링 그리고 부드럽지만 강한, 외유내강적인 그의 피아니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배음(倍音, overtone)과 배음들의 결합으로 증폭되는 소리의 웨이브를 만드는 그의 독특한 피아니즘은 마치 국악의 농현(弄絃)에서 소리 하나에 여러 떨림으로 깊고 다양한 소리를 우려내는 것처럼 그에게서 나오는 피아니즘의 농도는 상당히 짙었다. 소리 하나하나의 울림에서 다성(多聲, polyphonic)을 듣는 듯 다른 배음들과 결합된 더 큰 울림과 깊고 숙성된 소리들의 웨이브를 경험케 했다. 

현악기의 순정률이 아닌 평균율인 피아노에서 순정률적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잘 이해 되지는 않지만 그의 피아니즘은 득도를 한 어느 도인의 독경(讀經)소리처럼 콘서트홀 객석 깊숙이 소리의 감동을 전달하였다.

그는 이번 콘서트에서 쇼팽, 리스트 그리고 슈베르트의 음악을 연주했다. 쇼팽의 음악은 그의 인생 여정에 그가 쇼팽이 되고 그의 삶 전체이듯 쇼팽의 음악은 온전히 그에게서 녹아 흘러 내렸다. 그는 쇼팽 프렐류드 25번 Op.45에 이어 3개의 마주르카와 스케르초 3번 Op.39를 연주했다. 그리고 리스트의 '제네바의 종'과 '벨리니 노르마의 회상'을 연주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삶을 자축하듯 축제의 분위기가 넘치는 '벨리니 노르마의 회상'으로 그의 지난 삶의 여정을 위로하며 그만의 회상곡(回想曲)을 연주했다. 마지막 긴 울림의 잔향(殘響)은 잔잔한 감동을 남기며 인터미션으로 넘어갔다.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마스트미디어)

슈베르트(F .P. Schubert, 1797~1828) 소나타 21번 Bb장조 D. 960

당 타이 손, 이번 내한공연에서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작품들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 바로 이 작품이다.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은 모든 소나타들 중에 뛰어난 작품으로 꼽는 작품 중에 하나다. 곧 죽음을 앞둔 한 음악가의 절규, 세상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고통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선율과 화성 그리고 음악적 진행에 있어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룰 정도로 보기 드문 수작이다. 

특히 슈베르트가 가곡을 600여편 이나 작곡한 '가곡의 왕'답게 애수에 젖은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당 타이 손에게서 나오는 슈베르트는) 마치 해무(海霧)가 드리운 하롱베이의 잔잔한 무풍지대를 고요히 지나가는 나룻배를 연상하게 하는 음악은 청중 모두를 숨죽이며 집단 최면 속에 빠지게 한다. 모두가 최면에서 깨어날 쯤 되면 음악은 모든 여정을 마치고 거의 끝 부분에 닿아있다.

이러한 작품을 남긴 슈베르트는 화려한 인생을 산 인물이 결코 아니다. 스스로 열등감과 모멸감 그리고 애정 결핍적인 인생의 큐브 속에 갇힌 채 내면의 무한한 멜로디를 퍼 나르는 작곡가였다. 그런데 이 곡을 연주하는 당 타이 손의 모습 속에,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피아니즘은 쇼팽보다는 슈베르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쇼팽을 통해 피아니스트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제는 인생의 완숙기(完熟期)에 이르러 슈베르트 속에서 안식을 얻는 그만의 피아니즘을 보게 했다.

외로운 슈베르트, 그래서 유일한 탈출구가 음악이었던 그의 모습과 백색문화 유럽에서 사투를 벌이고 승자로 우뚝 선 외로운 아시안, 당 타이 손, 이 둘은 어딘가 많이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소나타 21번은 무엇보다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울림 속에 여유가 있는 그의 피아니즘은 방에 촛불 하나 켜진 듯 깊은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듯 하다. 그는 과거 베트남 시절로 돌아가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쇼팽의 음악과 함께했던 처음 그 추억, 아름다운 고향 하노이를 회상하며 그는 청중들의 환호와 갈채의 보답으로 쇼팽으로 시작한 무대를 쇼팽의 녹턴 20번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마침내 그의 연주는 시(詩)가 되고 잔잔한 강이 되어 콘서트홀 안에 흘러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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