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최초의 UN군 참전 '오산 죽미령 전투'를 아십니까?

전쟁이 발발하고 3일 만에 '서울'을 빼앗은 북한. 유엔은 북한의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고자 UN군 파병을 결정한다.

그리고 일본에 있던 미 24사단을 급히 편성해 찰스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 540명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부산에 도착해 오산 죽미령으로 이동한 스미스 부대원들은 1950년, 7월 5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을 맞아 혈전을 치른다.

당시 한국에 탱크는 한 대도 없던 상황,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과 6시간 동안 싸우며 180여명이 전사 · 실종되는 피해를 입는다.   

■ 포로로 잡힌 스미스 부대원의 미공개 영상

오산 전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제작진은 미국 노스다코타주에서 20여년간 스미스 부대원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났다.

리사 숄 여사는 스미스 부대원의 월급명세서 등 귀한 자료들을 제작진에게 보여주었다. 수집한 자료중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스미스 부대원의 영상도 있었다.

리사가 이렇게 스미스 부대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오산 죽미령 전쟁에 참여한 스미스부대원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한쪽 손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잃은 아버지는 지금도 1950년 7월의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스미스 부대의 유일한 한국인, 윤승국 소장이 들려주는 그날의 진실

윤승국 소장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첫 전투였던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있었던 24살의 대위 윤승국은 전쟁이 나자 스미스 부대의 연락장교를 명받는다. 

그는 스미스 부대의 오산 죽미령 전투 생생한 참상들을 곁에서 지켜봤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북한군의 남진을 막으라는 임무를 수행하던 긴박했던 당시 상황들. 취재진은 윤승국 소장을 만나 왜 목숨을 걸고 지연 작전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는지 숨겨진 진실을 들어봤다.

6·25 최초의 종군여기자 '마거리트 히긴스'가 본 오산전투

한국 해병을 '귀신 잡는 해병'으로 세계에 소개한 미국 종군여기자인 마거리트 히긴스. 그녀는 6·25전쟁이 벌어지는 전투 현장을 직접 취재하였고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히긴스는 한국 전선을 시찰한 맥아더 사령관을 만나 미 지상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전 세계에 타전한다.

그녀가 쓴 최초의 한국전쟁 관련 단행본인 <WAR OF KOREA>에는 스미스 부대 최초의 희생자를 목격했던 순간 등 그녀가 겪은 오산 죽미령전투 목격담이 기록돼 있다. 마거리트 히긴스의 기록을 통해 전쟁이 패배할 수 없었던 원인과 그 결과를 파헤쳐 본다. 

■ 오산 전투의 교훈과 의의

취재결과 오산 죽미령전투 스미스부대원들의 패배 원인은 북한군을 얕잡아 본 극동사령관 맥아더의 오판 때문이었다. 미 2개 사단만 보내면 북한군을 무릎 꿇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죽미령에서 만난 북한군의 전력은 예상 외로 강했던 것이다.

사망자 및 실종자 180여 명을 잃고서야 북한군을 제대로 알고 이후 전쟁 작전을 새로 구상하며 큰 틀을 바꾼 계기로 삼은 것인데..

6시간 동안 진행된 짧은 전투였고 패배한 전투였지만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켜 국군과 유엔군 낙동강 교두보를 지켜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준 스미스 부대의 죽미령 전투. 이 전투를 계기로 소련군이 본격 개입했으며 본격적으로 유엔군이 투입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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