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이제 엄마들이 직접 정치에 나선다!" 선언

(서울=국제뉴스) 이승희 기자 = 엄마들의 정치 참여를 도모하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공동대표 이고은·장하나·조성실)이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정치권에 정책을 제안하는 등 본격 활동에 나섰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대한민국에서 엄마로서 겪는 사회적 불합리와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고자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지난 4월부터 창립을 준비해왔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날 창립총회에서 "엄마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 평등 사회·모든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복지 사회·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며 단체 창립의 목적을 밝혔다.

창립 첫 활동으로는 엄마들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인 보육과 노동 문제와 관련해 엄마들이 직접 디자인한 정책을 제시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를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민 정책 제안 프로젝트 '광화문 1번가'에 제안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보육 분야에 대해 ▲정책 설계 및 집행 과정에 부모 참여 의무화 ▲아동가족복지지출 예산 GDP 대비 3% 수준으로 증액 ▲보육 바우처 누수 없도록 보육기관 관리 감독 강화 ▲보육 기관 정보 공개 및 경영 투명화 ▲유·보 통합 5년 로드맵 제시 등을 요구했다.

노동 분야에 대해서는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률 목표치 설정 및 임기 내 달성 ▲'칼퇴근법' 연내 통과 ▲대체인력 활용 제도의 민간 확대 ▲'스마트 근로감독' 전체 사업장 실시 ▲여성노동자의 노동권·모성권 보호 전문 기관 설치 등을 요구했다.

한편 '정치하는엄마들'은 정책을 제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향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함으로써 양육 당사자인 엄마들이 정책 입안 및 법 제·개정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 '엄마 노릇' 힘든 대한민국…엄마들이 정치에 나선 이유

대한민국에서 '엄마 노릇'하기 참 어렵다. 사회는 아이 낳을 때만 "애국한다"고 격려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보면 모르쇠로 돌변한다.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쓸 수 없고, 믿을 만한 보육 기관에 아이를 맡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길고 긴 노동시간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고, 버티다 못해 사표를 쓰면 '경단녀'가 되어 영영 사회와는 이별이다.

아이 키우는 일은 또 어떤가. 사회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니, 육아 정보는 시장이 주도하는 상업주의에 잠식당했다.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바람은 경쟁 일변도의 교육 환경을 더욱 부추긴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내기도 힘들다. 엄마들을 보는 시선도 각박해져 자칫하면 '맘충'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엄마들의 이런 고통은 우리 사회 구조의 각종 불합리와 모순에 따른 공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인간의 생애 주기적 과제를 오로지 '여성'의 사적인 일로만 규정하고 가두는 데서 오는 억압과 착취의 산물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엄마들이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제 엄마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 열기 뜨거웠던 11일 창립총회 현장, 무엇을 논의했나

지난 11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여성플라자 4층 시청각실에서는 회원들을 비롯해 생후 50일 된 유아부터 아동 및 초등학생 아이들, 아빠들까지 50여 명이 함께 모여 마치 '가족행사'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딱딱하고 격식 있는 일반 단체 창립총회와는 달리,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창립총회인 만큼 참석자들의 발언 목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이색적인 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각자 '정치하는엄마들' 창립에 동참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며 엄마들에게 불합리한 대한민국의 구조와 문제점, 해결 방안 등에 대해 토론했다. 회원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운희 회원은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이 사회에서 취약한 존재임을 느끼게 됐다"면서 "엄마로서 내가 겪는 문제가 내 딸이 겪을 일이라 생각하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소향 회원은 "아이를 낳기 전엔 엄마의 삶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는데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나 싶다"며 "집단 모성으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단체의 활동 주체인 '엄마'의 개념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국한하지 않고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등 돌봄을 수행하고 있거나 향후 수행하고자 하는 모든 양육의 주체로 아우르자는 취지의 '사회적 모성'으로 정의하자는 데 공감했다.

한편 '정치하는엄마들'이 다룰 현안이 보육, 노동, 교육, 환경, 의료 및 보건, 여성 등 다양한 분야에 많지만, 참석자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보육 문제와 노동 문제를 꼽았다.

특히 보육 분야의 경우 법 제·개정 및 정책 입안 테이블에 부모 당사자가 포함되지 못해 현실성과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공감하며 "양육 당사자인 부모가 보육 정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노동 분야에서는 일·가정 양립과 평등육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출산휴가·육아휴직 시 대체인력 채용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정치하는엄마들'이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다 '정책 제안 2제'

정책 제안① : '보육'-"부모 당사자, 직접 정책 테이블에 앉겠다."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10여 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으로 100조원을 썼다는 사실에 부모들은 경악한다. 과연 쏟아 부은 돈만큼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2013년 OECD 주요국의 GDP 대비 가족지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쏟은 예산은 16조 2580억원으로 GDP 대비 1.13%다.

이 '가족지출'이란 국가가 출산 지원을 위해 각 가정에 투입하는 예산 총액, 즉 가정양육수당, 어린이집 지원비, 출산휴가·육아휴직 급여비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을 말한다.

외국의 경우 GDP 대비 가족지출 비중이 영국은 3.8%, 스웨덴은 3.64%, 프랑스는 2.91%, 독일은 2.17%, 일본은 1.26%로 우리나라는 영국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족지출은 2014년 1.11%(16조5500억원), 2015년 1.07%(16조9460억원)로 예산총액은 늘었지만 비중은 점점 떨어지기까지 했다.

미미한 수준의 저출산 예산은 대부분 보육·돌봄 서비스인 무상보육에 78%(12조 5900억원) 쏠려 있다. 무상보육에 돈을 많이 쓴다면 부모들이 보육 정책에 따른 효과를 체감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가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보육 시설을 확대했고, 그 결과 가정·민간 어린이집이 급속히 증가했으나 정부가 민간 보육기관을 적극 관리·감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만 쓰고 생색만 냈지, 늘어난 시설에 보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까지는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어떤 보육 기관에 맡겨야 할지 혼란스럽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좋다고 하지만 전국 어린이집 4만1084개소 가운데 국공립은 2016년 기준으로 6.9%(2859개소)에 불과하다. 이용 아동 수 기준으로는 12.1%(17만5929명)이다.

국공립 유치원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시설 수는 2016년 11월 기준으로 국공립과 사립이 각각 4696곳, 4291곳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규모가 작은 곳이 많기에 이용 아동 수는 전체의 24.1%(17만349명)에 불과하다.

새 정부는 좋은 보육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당사자 단체인 '정치하는엄마들'이 보기에 새 정부의 정책들은 선언적 수준이라는 판단을 한다.

국공립 유치원 이용 아동을 전체 40% 수준까지 높이고 사립 유치원의 교사 처우를 개선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한 정책들도 있지만, 육아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정부가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며 엄마들은 아이 낳은 수단으로 보고 출산율 수치만 높이는데 골몰해서는 결코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보육 정책이 튼튼한 나라라는 믿음만 있으면 출산율은 저절로 오른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생색만 내는 정책들에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지자체 공무원, 보육 기관 담당자만으로 이뤄진 논의 테이블에서는 실질적인 보육 정책이 나올 수 없다"며

"육아 당사자인 엄마들이 정책 설계와 집행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정책 논의 테이블에 엄마들의 자리를 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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