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특별한 여행

(서울=국제뉴스) 이성범 기자 = 한 번 떠나보면 알게 된다. 돌아왔을 때의 반가움과 익숙함은, 떠날 때 기대했던 그 방향이 아님을. 어느 순간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삶의 한 순간이 되고, 떠나지 못할 때에는 일상을 여행으로 꾸밀 줄도 알게 된다.

이렇게 일상에서 여행을 느끼고 여행에서 일상을 찾아내며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먼 나라도 좋고 가까운 이웃나라도 좋으며, 하루에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국내여행도 좋다. 내집 앞 골목이나 카페에서도 두근거리는 여행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끊임없이 떠나고 머무르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여행의 취향'에 대해 기록하며 성장한 스토리를 담은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출판사 리뷰>

“내게 여행이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이고,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 덕에,

출장이든 홀로여행이든 일상여행이든

떠나고 돌아옴은 상당히 즐거웠다.”

 

고교 1년. 미국으로 떠난 한 달간의 어학연수는 여행중독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경험해본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과 설레임은 '여행연습'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그후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그녀를 자꾸 부추겼다.

서양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에게 의미있는 파리. 프랑스어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엄마와 함께 한 달을 살기도 했고, 그녀가 겁 없이 홀로 떠난 첫 여행지이자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곳이다.

그녀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여행스토리에는 이유를 갖는 공간과 의미 있는 인연이 가득하다. 의미가 쉽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다 보면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건 아주 쉬운 일이 된다.

가본 곳보다 가볼 곳이 많은 여행자. 평소에 아주 편하게 신었던 플랫 구두 하나만을 챙겨간 여행에서 발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생했던 사건 이후 그녀는 꼬박꼬박 가볍고 좋은 신을 신고 여행을 나선다. 걸음걸음 좋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지만, 여행지에서 결코 혼자이지 않은 여행자.

 

언젠가부터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아졌지만, 혼자 한 여행에서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다. 사람을 좋아하고 인복이 많아서인지 가는 곳마다 좋은 인연이 함께했다. 많은 인연과 스치고 만나고 즐겨온 여행이었다.

그렇게 홀로 여행하는 시간이 쌓이며 자연히 외로움에 대한 부담이나 혼자인 데 대한 두려움은 더욱 엷어졌다. 게다가 그 누굴 만나지 않는 다 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늘 나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본문 323p 중에서)

그녀는 '역사'와 '문학'이라는 전공과 '사진'이라는 취미를 살려 테마여행도 자주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며 작가의 생가와 문학관을 즐겨찾기도 한다. 괴테, 발자크 등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의 자취가 있는 공간에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만남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점 거리와 전통깊은 책방에서 오래된 책 냄새 사이의 여유를 찾는다. 프랑스 작은 서점에 놓여있는 뜬금없는 불상에서 '왜곡된 동양관'을 엿보고, 제국주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이라는 이름은 '영국박물관'이어야 옳다는 주장도 한다.

건축물을 볼 때 앞과 옆 외에도 위와 아래를 꼭 본다는 그녀는 일반적인 시야에서 벗어난 낯선 느낌과 뜻밖의 즐거움을 즐긴다. 가우디의 건축작품을 대하며, 건물에 있는 사람보다 건축물 자체가 빛을 발한다는 걸 깨닫고, 상하이 와이탄의 밤은 사람이 아닌 건축물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공간과 건축물의 낭만 속에서 여행인연은 다시 여행을 부른다.

와이탄을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찍을 때는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와이탄의 조명은 건축물을 비춘다. 그곳에서 인물사진을 화사하고 멋지게 담으려 한들, 건물 아래에서 위를 향한 조명이 비추는 것은 사람 아닌 건축물이다. 빛을 발하는 건축물에 비해, 빛의 바깥쪽 어둠에 자리한 인물은 빛을 잃는다.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 플래시를 터뜨려도 잘 나오는 건 인물 아닌 건물이다. 그러니 와이탄에서는 주인공 되기를 일찍이 포기하는 게 좋다. (본문 152p 중에서)

사람 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장소에도 인연이 있는 거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잘 맞고, 쉽게 가까워지며 그 연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우연처럼, 기대 없이 나와 잘 맞는 연을 타국, 생경한 곳에서 만나고 느낀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나의 감정과 취향, 느낌을 힘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을 만나는 여정이 결국 여행의 목적이고, 여행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홍콩과 마카오는 나와 인연이 있는 공간, 인연이었다. (본문 280p 중에서)

여행은 정복의 개념이 아니다. 안 가본 곳이 많지만 꼭 모든 곳을 두루두루 돌아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좋았던 곳은 기대를 안고 또 찾고, 사진 한 장이 이끄는 곳은 설레임 가득 안고 찾기도 한다. 나의 취향을 알아내면 가성비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유달리 겁많은 그녀가 정원이 가진 매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영화 덕분이었고 여행의 힘이었다. 모차르트가 대중에게 기억되는 모습에서 '사람이 사후에 기억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며, 화려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그윽한 분위기의 '물의 도시' 주자자오 모두를 가치있게 즐길 줄 안다.

유독 기찻길을 좋아하고 골목을 좋아하고 도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의 에세이 '여행의 취향'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여행의 취향'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시간이다.

〈차 례〉

1장 :: 여행, 그것은

1 여행연습

2 이유를 갖는 공간

3 좋은 곳을 향해

4 머무는 취향

5 다시

6 여행그릇

7 낭비한 시간

8 나홀로, 어느 순간보다

9 테마가 있는 여행

10 필수 vs. 필수는 아니지만

11 여행실수, 선물일지도

12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

 

2장 :: 여행을 부추기는 사진 한 장

1 하루여행, 만병통치약

2 기찻길 마법

3 사진 한 장이 이끈 곳

4 길 잃기에 완벽한 곳

5 길과 성곽

6 그의 도시

7 정원보다 아름다운, 그곳

8 문학영웅과 다섯 시간

9 고서점과 어린왕자

10 주인공

11 달콤하게 기억된 이

12 사운드 오브 뮤직

13 눈 내리는 길과 라떼아트

14 다시 찾은 물 위의 마을

 

3장 :: 생각이 머무는 그곳

1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그리고 불상

2 그와의 만남

3 카페

4 세상의 기원과 마리안느

5 배틀, 유사함과 경쟁

6 대영박물관 아닌!

7 공간 읽기

8 아쉽게도! 카프카

9 사람, 기억을 안은 곳

10 축제

11 여백과 정적

12 낭만적 구조

 

4장 :: 그렇게, 인연

1 여행인연이 다시 여행을 부르고

2 그려낸 나

3 사이, 찰나의 물듦

4 맛 보다 향

5 인연 맞는 곳

6 굳이 찾지는 않지만

7 여배우와 모히토

8 상점에서

9 배려

10 대접

11 인형의 힘

12 아기와 믿음

13 소나기와 원피스

14 나에게 주는 시간

 

〈책 속으로〉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하며 일상생활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파리 숙소 부엌에서 서툰 솜씨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거나, 베네치아의 골목골목을 서울 우리집 동네 돌아다니듯 거닐 때, 하루에도 격차가 큰 런던 날씨에 당황하지 않고 살포시 내리는 비쯤은 그냥저냥 맞고 다니며, 서울 포장마차에서 새빨간 떡볶이를 콕콕 찍어 먹듯 호치민 노점상에 털썩 주저앉아 쌀국수 면발을 후루룩 먹고 나서 주인아줌마가 권하는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 요거트를 디저트 삼아 푹푹 떠먹을 때 여행은 낯설고 물선 것이 아닌 그저 일상이 되어준다.

- 본문 60~61p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 중에서

 

알려진 이름만큼 볼 건 없고 사람만 많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온 터라 정동진을 향한 발걸음에는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바다를 좋아해서 갔던 거지, 산이었다면 그런 소릴 듣고 갔을 리 없다. 물은 언제나 옳다. 바다는 최고다! 정동진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알았다. 실수했구나. 눈으로 보기 전에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을 잊고 있었다. 큰 실수임이 분명했다. 바다 내음에 설풋 생경한 멋이 느껴졌다. 폐철로였다. 바다 앞에 남겨진 폐철로. 바다와 철길, 얼마나 낭만적인 조합이고 특별한 어울림이었는지. 정동진에 대해 그동안 들어온 많은 진부한 증언들을 바닷바람에 날려 보냈음은 물론이다.

- 본문 82p '기찻길 마법' 중에서

 

그곳의 특별한 점은 앞으로 더욱 많은 스타일과 문화가 복합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성당은 가우디가 남긴 미완의 흔적으로,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완성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사람, 한 시대가 완성하는 건축물이 아닌 것이다. 기본 설계를 가우디의 디자인에 의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이 더해지며 다른 세대 작가들의 개성과 스타일이 더해질 게 아닌가. 국가와 문화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움직임과 미래를 가진 게 바로 그곳의 특별한 점이다. 아마 나는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겠지만, 몇 년 후 다시 찾을 성당은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다. 양식·문화적 실험과 가능성을 가진 성당의 미래가 무척 기대된다.

- 본문 123p '그의 도시' 중에서

 

녹차라떼에 요지야 캐릭터인 여인을 다소곳히 그려준다. 청아한 미가 인상적이지만 역시 좀 무섭다. 무서운 얼굴을 마시기가 좀 거북하고, 이 얼굴을 어디서부터 없애야 하나 주저하고 있으니, 동료가 입부터 없애라는 무서운 제안을 했다. 동료 말대로 입 부분부터 마시니 여인의 모습은 더욱 무서워졌지만, 부드러운 스팀밀크와 쌉싸름한 녹차 맛이 어우러져 혀끝에 닿는 식감이 좋고, 온몸이 따뜻해져왔다. 편안한 행복감이 깊게 밀려들었다. 철학의 길에 들어설 때만 해도 기대하지 못했던 감정이다. 역시 공간은 그 자체보다, 무언가 이야기가 담길 때 매력적이다. 눈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공간에서 뜻밖에 행복했다.

- 본문 172p '눈 내리는 길과 라떼아트' 중에서

 

상해 여행의 마지막, 수향마을의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할 수 있어 만족스러운 밤이다. 유독 물을 좋아하다가 물의 도시에 빠졌고, 물의 도시를 따라 서울에서 상해까지 갑작스러운 여행을 온 터였다. 주자자오, 치바오 그리고 항저우까지 물 위의 마을을 몇 곳이나 경험했으니 목표를 이룬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수향마을까지 가보고 싶은 욕심이 여전한 걸 보면, 물 위의 마을을 찾는 여정은 그리 멀지 않은 날 다시 이어질 것 같다.

- 본문 178p '다시 찾은 물 위의 마을' 중에서

 

교토로 오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유 없이 바빴었는데, 그 생활과 마음상태가 이상스레 느껴졌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살았을까, 진부한 후회를 했다. 마음과 머리에 여유가 없으니 나를 볼 때나 다른 이를 대할 때나 날이 서 있었다. 사람과 삶을 대하는 데 기다려줌이 없었고 관대하지 못했다.

나지막한 바람만 오가는 사찰 안, 간간히 바람이 스치는 풍경소리만 들린다. 가득 차있던 마음과 머리를 비웠다. 다시 채워질 게 분명하지만 비워진 기억만으로도 가끔 여유와 평온을 얻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 본문 240p '여백과 정적' 중에서

 

딱 부러지는 이유 없이 힘든 일상의 나날이 있다. 그런 피로와 어려움이 한계를 넘어설 때면 난 작은 사치로 나 자신을 달래곤 한다.

갖고 싶었던 귀걸이를 사거나 참고 있던 고칼로리의 매운 음식을 먹으며, 소중한 이와 미뤄왔던 약속과 만남으로 나를 위로한다. 나를 위한 작은 대접을 받은 뒤에는 무슨 일이건 분명 전보다 나아져 있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한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씩씩한 모습을 되찾고, 꽤 견딜 만해진다.

- 본문 305p '대접' 중에서

 

〈저자소개〉고나희

연세대 사학과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책과 여행,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어학연수와 대학 전공 답사, 해외출장, 해외 장기체류 등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했다.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 이후 홀로 하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다음 여행지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일상을 여행으로, 여행을 일상으로 여기는 일상여행자.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