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 신화! 당 타이 손 내한 리사이틀, 6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6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서울=국제뉴스) 강창호 기자 = 최근 ‘현재 진행형 신화! 당 타이 손의 내한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는 마스트미디어의 주선으로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에 대한 내용을 게재했다.

1) 한국 팬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한국 관객 분들께 따뜻한 인사 전합니다. 지금 한국은 따뜻한 봄이겠네요, 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어서 한국 관객 여러분을 위해 연주하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2) 한국에서 다시 공연하는 소감은?

1월 경 아시아에서 클래식 붐이 일어났던 것으로 압니다. 특히 제 생각에는 한국이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서울은 아시아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지인데요, 저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특히, 피아니스트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활약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콘서트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콩쿠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클래식 관객들의 연령대도 낮고, 이것에 대해 항상 기쁘게 생각합니다.

3)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다음 진행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서 폴란드에 갑니다. 파데레프스키 음반을 녹음할 예정입니다. 음반의 반은 이미 제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들과의 공연에서 바데레프스키 콘체르토를 연주했고, 그들은 음반 발매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머지를 완성하기 위하여 폴란드에 갑니다. 그래서 저의 다음 프로젝트는 파데레프스키이고 다음 시즌에 많은 그의 음악들을 연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올해 저는 또 다른 음반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바로 슈베르트 음반입니다. 이 음반은 이미 지난 1월에 녹음을 끝냈고, 5월 말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다음은 인터뷰 질문에 도움을 주신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장기웅 교수(동아방송예술대학교)의 질의 응답을 게재하였다.

4) 그때 당시 베트남은 전쟁 중이고 나라가 힘들었던 시절인데 어떻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으며 러시아 유학에서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게 된 이야기, 또 쇼팽 콩쿠르에서 동양인 피아니스트로 당시 느낀점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질문)

저는 운이 좋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쇼팽 음악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전쟁 때문에 산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촛불 그리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 이것은 쇼팽 음악을 위해 아주 완벽한 환경이었습니다. 쇼팽의 멜로디는 저의 어머니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더욱이 그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그의 삶이 그의 음악에 녹아 있기 때문에 아무런 강요와 압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우 친숙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베트남에서 음악을 배우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쇼팽을 위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1970년 쇼팽 콩쿠르에 초대 되셨고 그곳에서 쇼팽 악보, 음반, 서적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을 가져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적절하게 쇼팽의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오로지 쇼팽뿐이었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도 없이 오직 쇼팽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피가 되었습니다. 제가 쇼팽과의 연결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행운이었습니다. 

베트남 사람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편견 같은 거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양 음악과 음악을 연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수 없다’ 이것은 자신감의 부족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우승 이후, 베트남 사람들과 정부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들에게 더 많은 희망과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저 자신에게는 절대로 기대해보지 못한, 아주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저의 삶은 물론 저의 가족의 삶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콩쿠르 우승 전에는 저는 그저 한 명의 학생에 불과하였습니다. 우승 이후에는 세계적인 커리어를 위한 모든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를 서포트 하고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아픈 가족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음악적인 얘기로 돌아가서 콩쿠르 우승 이후 저는 제가 세계적인 경력을 쌓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공부를 위하여 모스크바에 간 지 3년 만에 우승을 하게 되었고,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짧은 시간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로 돌아갔고, 공부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이 콩쿠르 우승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저에게 왔기 때문에 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영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콘서트 경험도 없었고, 서양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정부에 의해 컨트롤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외에서 아주 제한되게 연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저에게 쇼팽 콩쿠르 우승은 오히려 책임감, 그리고 더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이전의 우승자들이 아주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었기 때문인데요, 처음 우승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겁이 났고 무서웠습니다.

5) 피아노 독주회가 아닌 협주곡을 연주할 경우 함께 협연해보고 싶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장기웅 교수의 질문)

저는 연주하고 싶은 협주곡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쇼팽 협주곡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쇼팽 협주곡은 많은 루바토를 가지고 있어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유연성 있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많은 지휘자들이 기피 하기도 하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음악입니다. 언젠가 꼭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현재 진행형 신화!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쇼팽 콩쿠르 동양인 최초 우승자, 당 타이 손’

당 타이 손 하면 ‘쇼팽’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쇼팽이라는 영광이자 굴레에 갇혀있던 당 타이 손은 2014년 내한 독주회에서 ‘프로코피예프, 슈만, 라벨’ 프로그램으로 쇼팽에서 벗어나서도 뛰어난 서정미, 시적 감성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절대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정확하고 뚜렷한 음색을 선사하며 평론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는 쇼팽과 더불어 리스트와 슈베르트를 선보이며 가장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다채로운 모습으로 청중을 만난다. 그를 대표하는 쇼팽의 작품을 시작으로, 리스트의 모든 음악적 양식을 담은 최대 걸작 <순례의 해> 1년 스위스 中 9. 제네바의 종, 리스트 작품 중 난곡 중의 난곡으로 불리는 <노르마의 회상> 그리고 “베토벤 이후에 작곡 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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