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국제뉴스) 박진영 기자 =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禮, manners)는 미덕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해 예(절)를 가르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교육자(스승)를 통해 이루어지고, 그 교육자의 관리와 교육체계, 교육정책 등은 교육청, 교육부에서 관장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를 상대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명함'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보니 명함을 서로 교환하는 데에도 '예절(manners)'이란 것이 있다. 명함은 서열이 낮은 사람이 먼저 건넨다. 단, 다른 회사에 방문했다면 지위와 관계 없이 방문한 사람이 먼저 건넨다. 명함은 두 손으로 건네며, 한 손으로 건넬 때는 왼손이 오른손을 받치는 자세여야 한다. 명함을 받을 때는 상대방 서열이 낮더라도 일어서서 받는다 등등.

본 기자가 지난 20일 경기꿈의대학 취재차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 고교교육정상화팀을 방문했다. 경기도교육청에 출입통보를 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교육청 임직원들 중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기꿈의대학 업무를 맡고 있는 고교교육정상화팀 사무실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며 들어가니 직원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사무실의 가장 높은 분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만이 제일 안쪽에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뒷모습만 보일 뿐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책이나 서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사무실 직원에게 저 분이 장학사(나중에 확인하니 오모 장학관)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기에 그 분에게 다가갔다. 그 분이 고개를 돌렸다. 목례를 하고 소속과 이름을 밝히며 명함을 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 분은 손을 뻗어 명함을 받으려 했다.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본 기자는 웃으면서 "일어나지 않으시니...,"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명함을 주었다. 그 분은 마지못해 일어나 손을 내밀면서 앉으라고 하고는 바로 소파에 앉는다. 본 기자는 "명함 하나 주십시요?"라고 했다. 그 분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하면서 명함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왜 안주시는 거죠?"라고 물으니, "(귀찮다는 듯이)명함을 주면 밤 늦게까지 기자들이 전화해서...,"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계속 보게될 사람이다. 경기꿈의대학에 대한 취재목적으로 그 업무의 책임자를 찾아가 의견을 들어 보려는 기자에게 - 다른 언론사 기자에 대한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나 -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일반적인 예(禮)를 벗어난다. 더욱이 경기 교육의 산실인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의 품행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의를 벗어난 행동이다. 

확인해 보니 이 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으로 오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했다. 고등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졌던 수장이었다. 이런 스승 밑에서 교육받았던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분은 자신이 귀찮아서 한 행동이 상대에게 무시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거나 모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교육자이다. 알고 있는 지식과 행동이 이렇게 다른 교육자에게 맡겨진 경기교육의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심히 걱정스럽다는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문록(文錄)', '회남자(淮南子)' 설산훈편(說山訓篇)에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잎 낙엽이 지는 것으로 천하가 가을인 것을 안다는 뜻으로, 작은 것으로 큰 일을 짐작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이 단편적인 짧은 만남으로 이 장학관은 본 기자에게 경기교육의 백년대계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장학관이 본 기자에게만 이런 행동을 했을까...?

경기도교육청의 '경기꿈의대학'이 지난 10일 야심차게 출범을 했다. 경기꿈의대학은 도교육청이 고등학생들 스스로 진로·적성을 찾도록 인문사회, 자연과학, 공학, 예체능, 교양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며 86개 대학과 협력해 만든 사실상 야간자율학습의 대체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경기교육청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이고 식중독 예방을 위해 저녁 급식을 하는 학교를 특별 관리하겠다"는 지침을 학교에 내려보냈다. 저녁 급식을 제공하면 교육청의 특별 관리를 받아야 하는 학교들 중 상당수는 저녁 급식을 중단했다. 그 결과 경기도 고교 470곳 가운데 저녁 급식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는 지난해 86%에서 올해 37%로 크게 줄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저녁 급식의 중단이 고스란히 학생들의 피해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저녁급식이 중단되자 배가 고픈 학생들은 학교 근처 편의점으로 몰려가 컵라면과 탄산음료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맞벌이하는 학부모들은 학생들 스스로 진로·적성을 찾도록 하겠다는 정책이 아이들의 건강권을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꿈의대학 1학기 강좌개설 결과, 등록 강좌 1171개 중 819개 강좌가 개설됐다. 다시 말해 등록강좌 중 30% 이상이 폐강됨으로써 경기꿈의대학 강좌가 학생 스스로 진로·적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과 경기도교육청이 질적인 측면보다는 구색갖춰 보여주겠다는 양적측면에만 너무 급급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 경기꿈의대학 수강생은 총 1만9788명이다. 이 중 약 11%의 학생들이 2강좌, 약 2%의 학생들이 3강좌를 선택했다. 경기도 전체 고등학생 약 43만6천명 중 약 4.5%만이 경기꿈의대학에 다닌다. 

지난해 2학기 기준 경기도내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참여율 94.26%로 경기도 고교 470곳 중 37곳을 뺀 대부분의 학교가 참여했다. 또한 학교 저녁급식 혜택을 받았던 학생은 19만4101명(44.5%)이고, 이 중 주 4회 이상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한 학생은 8만8724명(20.34%)이었다. 올해 저녁급식을 하고 있는 학교는 174곳이며, 6만4124명이 저녁급식을 받고 있다.

결국 경기꿈의대학 개설강좌에 수강을 한 학생과 저녁급식을 받고 있는 학생을 뺀 11만189명의 학생이 또 다른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다. 즉 경기도교육청의 경기꿈의대학은 경기도내 학생의 약 4.5%, 여전히 저녁 급식을 받고 있는 학생을 뺀 13만 명 중 2만 명 약 15%의 소수 학생을 위한 정책으로 확인됐다.

경기꿈의대학 정책이 시행된 이후 경기도내 고교 11만명이 넘는 학생이 학교 저녁급식 혜택도 못받고, 야간자율학습이나 꿈의대학 강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결국 집, 독서실 또는 학원으로 가거나, 거리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 맞벌이 학부모의 불만처럼 학생들의 건강권 보장이 안되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또한 경기꿈의대학 대신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로 인해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의 공교육 정상화 방안과 역행해 사교육 시장은 더욱 활성화되고,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엽낙지천하추'를 생각나게 하는 교육과정정책과 고교교육정상화팀의 오모 장학관에 의해 진행된 경기꿈의대학은 결국 이런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1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1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에 대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獲者穀也, 一樹十獲者木也, 一樹百獲者人也)"라고 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이 말과 함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을 명심해 경기교육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바로 세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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