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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오페라 9단] 매력적인 팜므파탈 '카르멘'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정경 칼럼니스트  |  gukjenews@guk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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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4  15: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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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The Metropolitan) 앞 바리톤 정경 교수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남성 중심의 문화는 여성들에 있어 거대한 억압이었다. 흔히 사용하는 '여성스러움', '여성다움' 등의 단어로부터 어떤 일관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면 이는 엄밀히 말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구시대적 관념의 잔재인 것이다. 상냥함, 순결함, 희생, 순종 등 여성에게 요구되어 온 가치들은 대개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 남성이 지녀야 마땅한 덕목과 정반대인 개념들이었다.

18세기 무렵 자유주의, 계몽주의 등의 근대 사상이 유럽에 퍼지면서 주체적인 여성상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페라를 비롯해 소설 등 예술작품에서 그려진 여성상은 소위 '여성스럽다'는 제약 안에서 소소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점차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낭만파 문학가들은 작품 속에 '비극적 상황에 미쳐 광기를 품은 여성'이라는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분명 전통적인 여성상과 현격히 다른 그림이었지만 이러한 여성들 역시 비극을 마주하기 전에는 대개의 경우 전통적인 여성상, 혹은 여성스러운 여성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등장한 어느 오페라 작품에서 그간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근본부터 깨뜨리는 한 여인이 등장하며 새로운 시대의 약동을 알린다. 바로 '카르멘'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단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의미로 순화, 확장되었지만 본래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는 단어는 상대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마력을 지닌 여성을 의미했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남성들은 이 팜므파탈과 엮이고, 헤어나지 못하면서 함께 비극적인 파국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오페라 '카르멘'의 남주인공 돈 호세가 대표적인 예이다.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주체성을 지닌 여성 카르멘은 팜므파탈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 '사랑은 반항하는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를 비롯해 '세비야의 성벽에서 만나요(Pres des remparts de Seville)', '당신을 위한 춤을(Je vais danser en votre honneur)'에는 그녀의 팜므파탈로서의 면모가 모두 담겨 있다. 매혹과 애절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의 타깃으로 삼은 남성을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유혹한다.

특히 하바네라의 가사 중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라는 표현은 카르멘이란 인물을 완벽하게 축약한다. 분방하고 치명적인 그녀의 유혹을 받은 남성들은 어느새 그녀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결국엔 길들여지고 만다.

제2막에서 군에 복귀해야 하는 돈 호세에게 실망한 카르멘이 투정을 부리자 돈 호세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아리아 '당신이 나에게 던져준 꽃을(La fleur que tu m'avais jetee)'을 부른다. 이는 한 여인의 매력에 완전히 홀려버린 남자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 하나의 욕망, 단 하나의 소망밖에 없지. 너를 다시 만나는 것'이라는 표현이 담긴 이 노래는 그가 이미 카르멘의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돈 호세는 카르멘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도 끝까지 카르멘을 포기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착하게 된다. 결국 그녀를 갖지 못할 상황에 닥치자 그는 카르멘이 다른 누구의 곁으로도 갈 수 없도록 그녀를 죽이고 만다. 카르멘의 인생에 자기가 뚜렷한 흔적을 남길 방법은 그녀를 죽이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믿은 것일까.

카르멘은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사랑할 대상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녀의 삶은 타고난 운명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관능과 매력을 무기로 끊임없이 남자를 유혹한다. 흥미가 떨어지면 상대로부터 매몰차게 돌아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남자를 다루는 카르멘의 모습은 맹수를 조련하는 능숙한 곡예사, 조련사를 연상케 한다.

집시라는 카르멘의 배경도 그녀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이다. 집시는 본래 서남아시아에 살던 인도 아랍계 민족으로, 고향을 잃고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유태인보다 더욱 심한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공식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도 큰 차별대우를 받아 대다수가 적은 보수와 고된 노동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결국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라고는 도둑질, 암거래, 밀수 등 암흑세계뿐이었다.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세비야의 담배공장에는 수많은 집시들이 노동자로 일했다. 환경은 열악했고, 결국 이러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많은 수가 밀수와 암거래에 손을 댔다. 카르멘은 이러한 집시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질서와 체제, 그리고 관념에 종속되기를 거부한, 새로운 시대를 암시하는 신여성이었던 것이다.

◇ 마리아 칼라스의 난제

카르멘이라는 배역은 기본적으로 메조소프라노에게 할당되어 있었음에도 캐릭터 자체의 대단한 매력 탓에 많은 소프라노들이 배역에 도전하곤 했다.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들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히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성악가들 중 한 명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도 이 도전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리아 칼라스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로 대표되는 벨칸토 오페라를 20세기에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그녀가 활동하던 20세기 중엽은 베리스모 오페라, 즉 사실주의 오페라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투란도트', '토스카', '나비부인'으로 유명한 푸치니가 인기를 끌었고, 그에 반해 벨칸토 오페라는 기교만을 과시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외면을 받던 시기였다.

그녀는 안정된 벨칸토 창법과 탄탄한 음악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세간의 편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녀는 벨칸토뿐 아니라 고전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오페라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성악계의 거물이자 괴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장 어렵게 여긴 배역이 바로 카르멘이었다. 오페라 '카르멘'의 음반을 녹음하기도, 독창회에서 카르멘의 아리아를 부른 경험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을 '전통적 여성성을 지닌 여성'이라고 정의하며 지나치게 파격적인 여성상인 카르멘을 가장 소화하기 까다로운 캐릭터로 설명했다. 세기가 바뀌어도 카르멘이라는 여성이 지닌 마력은 여전히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정경 칼럼니스트 | 2017-04-04 15: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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