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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오페라 9단] 카르멘, 떠난 뒤 빛 발한 걸작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정경 칼럼니스트  |  gukjenews@guk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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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1  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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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바리톤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작곡가 조르주 비제는 1838년 10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840년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세자르 레오폴트 비제였다. 그는 성악과 작곡 활동을 취미로 즐기는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당대의 유명 성악교사였던 이모 등 음악과 예술적인 자원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비제는 아홉 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음악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비제는 특히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로마 대상 작곡 콩쿠르에 칸타타 '다윗'을 출품해 입상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듬해에는 단막 오페레타 '미라클 박사'를 부프 파리지엥 극장 무대에 올렸으며 이 작품으로 로마 대상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엑토르 베를리오즈, 모리스 라벨 등 위대한 작곡가들도 입상하지 못한 콩쿠르에서 불과 10대 후반 청년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큰 화젯거리였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의 개막은 비제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3년간 로마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음악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비제는 로마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오페라와는 다른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하고 축적했다. 이는 곧 그의 작품들이 선보이는 비제만의 독특한 개성을 다지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3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비제는 본격적으로 오페라 창작에 주력하기 시작하여 1863년 '진주조개잡이'를 초연에 올리며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진주조개잡이'는 음악성에 비해 대본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조잡한 대본이 관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고 결국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는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되고 말았다.

비제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이반 4세', '퍼스의 아가씨', '자밀레', '동 로드리그' 등의 오페라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빛을 본 것은 1872년에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 '아를의 여인'에 수록된 음악 정도였다.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여 이들 작품을 실패작으로 볼 수는 없었다. 작품을 하나하나 발표하면서 비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그의 작품들이 가진 배경의 이국성을 들 수 있는데, 비제는 자신의 오페라 작품에 단 한 차례도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는 실론 섬, '이반 4세'는 러시아, '퍼스의 아가씨'는 스코틀랜드, '자밀레'는 이집트, '동 로드리그'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처럼 다양한 극의 배경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제는 프랑스 민속 선율을 바탕으로 삼되 각 이야기와 배경에 부합하는 이국적인 풍미를 가미하는 기법을 즐겼다. 이러한 비제의 성향이 완전하게 총집된 작품이 바로 걸작 오페라 '카르멘'이었다.

조르주 비제가 마지막으로 남긴 오페라 '카르멘'은 초연에 오른 뒤 대중의 싸늘한 시선과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저속하며 부도덕한 작품이라는 딱지가 붙은 '카르멘'은 오로지 작품의 성공만을 꿈꾸며 혼신의 힘을 쏟은 비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빛을 발하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 비극의 완벽, 오페라 '카르멘'

오페라 '카르멘'은 비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당대의 인기 작가였던 뤼도비크 알레비와 앙리 메이야크가 각색을 맡았다.

오랫동안 히트작이 없어 심한 압박을 받았던 비제는 오페라 '카르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삼을 수 있는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고 싶었던 것이다. 비제는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음에도 철야를 거듭해 작곡에 몰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악보는 모두 불태워버릴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던 비제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쏟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1875년 3월 3일, 오페라 '카르멘'은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에 오른다. 그러나 비제의 염원과는 달리 관객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어떤 이들은 화를 내며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대중의 반응에 민감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비제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더욱 의기소침해졌고, 절망에 빠져 결국 초연 석 달 만에 심장질환으로 인해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에 불과했다.

과로 상태에서 무리하게 장거리 수영을 하는 바람에 심장에 급격한 부담이 온 것이 공식적인 사인이었지만 비제의 지인들은 '카르멘' 초연의 실패와 작업 당시 쌓인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범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오페라 '카르멘'은 오늘날 걸작으로 칭송받음에도 불구하고 초연에서 그토록 참패를 맛본 것일까? 이에 대한 해석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바로 '카르멘'이 공연에 오른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주요 관객층에 기인한 해석이다.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중산층 관객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었다. 주말이면 커플들의 데이트나 맞선 장소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웃고 즐길 수 있는 희극적인 요소,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주인공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작품을 기대하며 이곳의 극장을 찾곤 했다.

한편 오페라 '카르멘'은 이와 같은 관객층의 기호를 완벽하게 배반하는 작품이었다.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집시와 탈영병, 하층민과 밀수꾼이었다. 당대의 타 오페라 작품들이 귀족, 부자, 하인 같은 일반적인 신분으로 등장인물을 구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파격이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파격적인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웃고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경악시키기 적합했다. 최하층민인 집시들이 담배공장 직공 또는 밀수꾼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무대 위에서 거친 몸싸움을 벌이다 급기야는 치정 살인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카르멘'에 대한 관객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평단과 극장 운영진에도 전달되었다. 비평가들은 이 새로운 작품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극장은 더 이상의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비제에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오페라 '카르멘'은 1876년 2월 2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1878년 6월 20일 런던에서 무대에 올라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작품에 점차 파리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결국 '카르멘'은 파리에서 다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게 된다. 다시 맞이한 기회에서 오페라 '카르멘'은 열광적인 찬사를 받게 되고, 그야말로 폭풍 같은 인기를 얻어 1904년 파리에서만 1000회 이상의 상연 기록을 남기는 등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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