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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셋째부인 주옥경, 진짜 '룸살롱 마담' 출신인가?청주 손병희 선생 유허지 의암기념관, 1915년 가족사진 속 주옥경 여사 모습 보여
김윤수 기자  |  younsoo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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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8  19: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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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 북이면 손병희 유허지 의암기념관 내에 전시돼 있는 사진이다. 손병희 선생 만 53세 생신기념 가족사진으로 이때를 역사학자들은 1915년경으로 보고 있다. (사진중앙에 앉아 있는 분이 손병희 선생이고 손병희 선생 오른쪽 첫 번째가 첫째부인 곽병화 씨고 두 번째가 둘째 부인 홍응화이다. 셋째 부인인 주옥경(붉은원)은 손병희 선생 왼쪽 첫 번째 이다.)

(청주=국제뉴스) 김윤수 기자 ="주옥경 여사는 손병희 선생의 세째 부인으로 1919년도에는 손병희 선생 내조에만 힘을 쓰던 부인인데 한국사 강사라는 사람이 역사를 왜곡해 부인을 '룸살롱 마담'으로 비하해 학생들에게 강의했다니 그 강사 도대체 역사를 재대로 알고 가르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마침 의암기념관에 손병희 선생 만 53세 생신기념 가족사진이 있으니 그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 손병희 유허지(遺墟地)에서 17일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지복현 씨는 의암기념관에서 한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은 서울 제동 자택에서 손병희 선생 53세 생신때 찍은 가족사진이라며 사진 속 한 여성을 가리키며 저 여성이 주옥경 여사라고 설명했다.

지복현 씨는 “손병희 선생이 만 53세면 대략 1915년경으로 주옥경 여사가 이때 가족사진에 나오는데 어떻게 한국사를 강의하는 스타강사라는 사람이 여사를 ‘룸살롱 마담’으로 비하했다”고 설민석 씨를 비난했다.

천도교중앙총부 관계자는 “주옥경 여사는 1915년에 이미 천도교인 명부에 올라와 있었다”며 “주옥경 여사를 ‘1919년도에 룸살롱(태화관) 마담를 하고 있었다’고 비유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논란과 관련 17일 회의를 열고 설민석 씨에게 공개사과를 정식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처럼 논란이 된 내용은 베스트셀러로도 오른 설민석 씨의 책 ‘무도 한국사 특강’ 초판에도 게재돼 논란이 야기됐다.

설민석 씨는 자신의 역사 강의 도중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 있었다. 태화관이라고. 대낮에도 거기로 간 거야. 그리고 거기서 낮술을 먹었다”라며 “태화관 마담 주옥경하고 손병희하고 사귀었다. 나중에 결혼한다. 그 마담이 할인해 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설민석 씨의 강의 내용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태화관이라는 룸살롱에 대낮(낮 12시)에 모여 술을 먹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스스로 붙잡혀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또한 그당시 주옥경 여사가 태화관 마담이었고 손병희 선생이 그 마담 때문에 태화관에서 민족대표를 불러 술판을 벌이고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고 말하고 있다.

   
▲ 태화관

태화관은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고급 요릿집이었다. 당초 태화관은 명월관의 인사동 지점이라고 봐야 한다. 명월관을 세운 안순환은 광화문 명월관의 규모가 작가 이완용의 개인 집인 순화궁을 사들여 조선요리옥으로 바꿔고 사람들은 명월관 인사동 지점을 태화관이라고 불렀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요릿집은 룸살롱이라기보다는 ‘피로연장’이나 ‘회식장소'의 원조였다. 당시 요릿집은 결혼식 피로연장, 회갑연장, 신문사 망년회장, 사회단체 창립총회장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설민석이 “기생 시중받으며 낮술 먹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고 한 데에 대해 “상상력이 과도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전 씨는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격 없는 사람들이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집단적 시각장애’가 정치 영역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라며 “골동품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골동품 수집’ 취미를 가지면 반드시 온 집안을 가짜로 채우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주옥경(朱鈺卿 1894~1982) 여사는 의암 손병희의 미망인으로 28세 때 홀로 돼 죽을 때까지 수절한 여성운동가였다. 수의당(守義堂)이라는 도호(道號)는 바로 ‘의암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도교의 여성운동은 우리나라 여성운동사와 궤를 같이 한다. 오랫동안 천도교 내수단(內修團)을 이끈 주옥경 여사는 일본에 유학한 엘리트로서 청빈하며 겸손한 일생을 살았다.

손병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갇히자 수의당 주옥경은 형무소 앞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세내어 지극한 정성으로 손병희의 옥바라지를 했다. 꼬박꼬박 하루 세끼 사식을 만들어 넣는 한편 교파를 가리지 않고 차입비용을 부담했다.

손병희는 옥중에서 뇌일혈로 쓰러졌다. 병보석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치료할 기회를 놓치고 수감된 지 19개월20일 만에야 풀려났다.

주옥경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병간호를 해서 가족들과 교도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잠시 차도를 보이던 손병희는 1922년 5월 19일 영면하고 만다. 이후로 주옥경은 87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60년간 수절하면서 고결한 여성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평양 근교 숙천에서 태어나 집안이 가난해 8세 때 평양기생학교에 들어갔다. 주산월(朱山月)이 그의 기명이다. 그는 몸을 파는 이·삼패(二三牌) 기녀가 아니라 기악과 서화에 능한 일패(一牌) 등급의 예단(藝壇 연예인)으로서 당시 매일신보 기자는 ‘서화의 천재’라고 평하고 있다.

주산월은 평양에서 서울로 오자마자 기둥서방이 없는 기생인 이른바 ‘무부기(無夫妓)조합’을 만들고 행수(行首)가 된다.

그해 명월관과 그 별관인 태화관을 출입하던 손병희를 만나 천도교 신도가 된 주옥경은 22세 때 셋째 부인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33살의 나이 차가 났다. 이후로 그는 가정과 교단에 헌신한다.

스승처럼 모시던 손병희가 순국하자 주옥경은 일본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여성운동에 투신한다. 소파 방정환의 미망인 손용화를 비롯해 손병희의 딸들은 주옥경을 깍듯이 어머니로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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