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동백' 모습. <울산 중구 제공 자료사진>

(울산=국제뉴스) 박운보 기자 =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강탈당했던 '울산 동백'이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400여년 만에 울산 중구 고향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구화(區花)로 지정됐다.

중구는 지난 16일 제193회 중구의회 임시회에 '상징물 관리 조례 변경조례안'을 상정, 의회가 이를 승인함에 따라 중구의 구화가 기존 '벚꽃'에서 '울산 동백'으로 변경한다고 19일 밝혔다.

중구청이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9일까지 주민과 직원을 대상으로 상징물 변경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1071명이 참여해 전체 82%인 881명이 '울산 동백'으로의 구화변경에 찬성했다.

이후 구정조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지난 16일 제193회 중구의회 임시회에서 변경조례안을 승인받아 최종 변경을 확정했다.

학성산에 자생하던 '울산 동백'은 3월부터 4월까지 한 나무에서 다섯 가지 색, 여덟 겹의 꽃을 피우는 희귀종이다. 꽃이 질 때도 일반 동백처럼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고 벚꽃처럼 한 잎 한 잎 떨어진다.

연분홍, 진홍, 분홍 등 다섯가지의 색깔로 여덟겹 꽃이 핀다고 해서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이라고도 불린다

이 동백나무는 임진왜란 때 울산 학성을 점령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려한 자태에 반해 일본으로 가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고 전해진다.

도요토미는 이 동백을 일본 교토 지장원(地藏院)에 심게 했고, 이 동백이 유명해지면서 지장원은 동백나무 절이라는 의미에서 춘사(椿寺)로 불리게 됐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동백나무 1세는 1983년 고사했지만 수령 100년 안팎의 2, 3세 동백 10여 그루가 이 절에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서 임진왜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울산 동백'은 1989년 한국예총 울산지부장인 최종두 일행에 의해 첫 발견됐다. 이후 울산의 민간단체와 부산 자비사 삼중 주지 등의 노력으로 1992년 약탈 400여년 만에 3세 묘목 세 그루가 우리나라로 돌아와 한 그루가 울산시청에 심어졌다.

중구는 '울산 동백'이 학성산에 자생한 희귀 품종이었던 만큼 2015년 11그루를 일본에서 들여와 5그루는 구청광장에 6그루는 학성공원에 나눠 심었다. 이후 전직 시 의원이 키워왔던 높이 2m, 폭 1.9m 크기의 35년생 울산 동백도 기증받아 구청에 심었다.

구청 관계자는 "울산 동백의 의미를 '번영'과 '희망'으로 정했다"며 "중구의 무한한 발전가능성과 미래상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꽃으로 중구의 정체성과 비전을 담아 지역에 널리 홍보하고 울산 동백의 보급에도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지난 2015년 5월21일 박성민 중구청장이 울산동백 묘목을 구청 분수광장에 심고 있는 모습.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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