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증거 제공 범인 잡을 기회 있었으나 안일한 대처로 놓쳐

 

(부산=국제뉴스) 최상인 기자 = 일명 '중고나라 물품사기'에 이용된 여성 피해자가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A(25.여) 씨는 지난해 12월 유명 인터넷 아르바이트 구인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재택 배송대행 알바 모집'이라는 한 업체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게시글에는 카메라 부품을 수입, 판매업체로 소개한 글과 함께 판매 중인 카메라 부품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었다. A 씨는 일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곧장 담당자 B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 B 씨는 A 씨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한 뒤 업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B 씨는 "카메라 부품이 고가의 물건이고 운송도중 파손의 우려가 많아 우리쪽에서 KTX열차 배송으로 A 씨에게 보낼 것이다. 물건이 도착하면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한 고객에게 하나씩 포장해 퀵 서비스로 보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B 씨는 배송할 때 필요한 퀵 서비스 비용을 입금받을 계좌번호와 카메라 부품들을 보낼 주소를 요구했고, A 씨는 자신의 계좌번호와 주소를 보냈다.

며칠 뒤 A 씨의 계좌에는 여러사람의 이름으로 한 사람당 1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이 넘는 금액이 입금됐다.

A 씨는 돈을 입금 받을 때마다 B 씨에게 '홍길동 150,000원'과 같이 입금자 이름과 금액을 문자로 보냈고, B 씨는 곧 카메라 부품이 도착할테니 받은 돈으로 퀵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고 했다. 

얼마 후 A 씨의 통장에는 300만원이 넘는 돈이 입금됐지만 카메라 부품은 오지 않고, 계좌에서 300만원을 출금해 음료수 상자에 넣어 포장한 뒤 퀵 서비스로 보내라는 등 B 씨는 엉뚱한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B 씨가 시킨 일을 반복하던 A 씨는 얼마 후 은행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B 씨에게 물건을 구매한 C 씨가 A 씨의 계좌에 돈을 송금했는데 잘못 보낸거라 돈을 돌려받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은행직원에게 "C 씨에게 돈을 입금은 받았지만 모두 B 씨에게 보낸 뒤라 그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은행에서 "A 씨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들은 A 씨는 불안한 마음에 가장 가까운 부산진경찰서를 찾아 그동안 B 씨와 거래내용을 모두 얘기했다.

당시 사건을 접수했던 부산진경찰서 D 수사관은 "A 씨가 B 씨에게 보낸 돈은 모두 B 씨의 돈이고, A 씨는 경제적인 손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죄 성립이 불가능하다"면서 "A 씨의 계좌에 입금된 사람들은 B 씨를 통해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로부터 신고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A 씨는 자신이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해당 경찰서에 진정서를 넣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중 B 씨를 직접 유인하기로 했다.

A 씨는 B 씨에게 마치 아직도 입금이 되고 있는 것처럼 입금자와 입금액이 적힌 거짓문자를 보냈다. 

A 씨의 유인에 걸려든 B 씨는 "입금 정보가 누락됐다. 퀵 서비스를 보낼테니 돈을 포장해서 보내라"고 했다. 

A 씨는 B 씨와의 통화 내용을 부산진경찰서 D 수사관에게 알렸다. 하지만 D 수사관은 "이 상황에서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퀵 서비스가 오면 그냥 가라고 얘기하라. 혹시 이 사건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증거들을 갖고 있다가 제출하면 된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후 A 씨는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진정이 종결됐다. 

▲ A 씨가 은행과 경찰서로부터 받은 안내문.

하지만 그 후로 한 달여가 지난 1월 25일, A 씨는 김해 중부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A 씨 은행계좌로 여러 사람들에게 물품 사기를 저지른 정황이 확인됐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A 씨는 앞서 부산진경찰서에 이 사건과 관련해 진정을 넣은 일이 있다고 말했지만 김해 중부경찰서경찰서 측은 "출석해서 진술을 해야 한다"며 조사에 응할 것을 권고했다.

경찰에 출석한 A 씨는 김해 중부경찰서 수사관으로부터 "A 씨가 배송 알바를 할 때 입금한 사람들이 신고했다"며 '피의자 안내서'를 건네받았다. 

이어 수사관은 '당신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라며 조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수사관에게 자신이 범인을 유인했던 사실을 말하며 "이런 상황이라면 경찰이 출동해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범인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내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수사관은 "지금와서 범인을 잡는 일은 어려울 것이고, 진범이 잡히지 않으면 수사 종결도 어렵다"며 "수사가 종결되지 않으면 A 씨는 계속 '피의자 신분'이다"고 말했다.

A 씨는 범죄에 이용된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 또 다른 피해 신고를 받고 경찰에 출석해야 되는 처지에 놓였다.

범행의 증거까지 명확했으나 "무시하라"는 태도로 범죄를 부풀린 경찰. 시민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순간 함께하지 못한다면 경찰의 신뢰가 점차 무너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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