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김용필회장

올해는 한중수교 25주년을 맞는다. 지난 25년간 한중관계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바람직하고 안정적인 관계가 이루어졌을까?

1990년대 말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는 지금도 그렇지만 남북문제와 미국의 MD구축과 중국의 반대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였다. 그리고 중국의 WTO가입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이때만 해도 한국사회는 중국어를 배운다거나 중국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데에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은 때였다.

1990년대를 뒤돌아보자.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자 마자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중국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지 않고 싼 인건비를 바라고 중국진출을 많이 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은 잘 사는 사람들이었고 돈도 잘 쓰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강했을 것이다.

동시에 중국 노동자들은 한국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조선족동포들은 한국인과 언어가 통하였지만 한국사회에 대해 환상만 갖고 한국에 가면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국비자를 받기 위해 중국에서 평생 일해도 벌기 어려운 고액의 빚을 지면서까지 가짜 결혼, 위명여권, 밀입국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입국하기도 하였고 그 과정에 사기를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한국에 들어온 중국 노동자들은 한국인의 멸시를 감내하며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이 때만 해도 한국인은 ‘갑’이었고 중국인은 ‘을’이었다.

2000년 중국이 WTO 가입국이 되면서 경제성장에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합류한 놀라운 변화라 세계가 깜짝 놀랐다. 13억 인구의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는 어떤가? 한중수교 10년이 넘어갔지만 여전히 중국인에 대해 까다롭기만 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변화된 것이 별로 없다. 그 결과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은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노동법을 개정하는 등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고, 이 바람에 중국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기업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중국에 가서 성공한 한국인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패가망신 한 채 한국에도 못오고 중국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 노동자들의 반한 감정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2000년대 가장 큰 변화라면 중국유학생 수가 급속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2000년대 초 1만명 미만이었던 중국유학생들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4만명, 8만명 대로 늘어났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이해를 높이고 지한파, 친한파를 만들어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현실은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같다.

그 현상이 2008년 4월 27일 서울광장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북경올림픽 성화가 서울에 도착하자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저지하려던 한국 민간단체에 맞서 중국유학생들이 대거 서울에 올라와 경찰과 충돌하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사회가 깜짝 놀란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한국에 중국유학생들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 지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경제의 중국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2010년대에 들어서 한중교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상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한국을 찾는 중국관광객이 불과 2, 3년 사이에 1천만명을 돌파했다. 서울 명동거리는 중국인 인파로 가득 메웠고, 한중 FTA 체결이 기정 사실화 되어 수면위로 떠올랐다. 동시에 한국사회에는 한중○○협회라는 민간단체가 우후죽순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고의 한중 교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본다.

재한중국인 100만, 재중한국인 80만, 중국관광객 1000만 시대를 맞이한 지금 한국과 중국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는 새해를 맞이하여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한국사회는 내부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일본과의 위안부 소녀상 갈등, 중국의 사드배치 반대 등 이해관계 속에서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한반도 정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치·외교적으로 풀수 없는 문제를 민간교류 등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한중민간교류시대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민간교류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상호신뢰일 것이다. 과연 이러한 민간교류가 가능할까? 이미 지난 25년간 한국인과 중국인은 어설픈 만남으로 서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믿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다보니 중국과의 교류와 사업을 포기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같다.

▲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와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임원진

여기서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와 중국의 파트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는 국제협력과 민간교류 증진을 위해 1954년 설립된 기구로 세계 각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해온 기관이다. 전 세계 157개국 500여개 단체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중국의 도시와 세계 각국의 도시들 간의 자매결연을 맺는 일을 추진해 왔고, 한국 도시하고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60여 곳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대외합작복무중심은 실제적으로 경제문화교류를 펼치는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내 사업단위 기구로 중국 개혁개방 시대를 맞이한 1980년대 이후부터 미국, 캐나다, 일본 등과 30년 넘게 민간교류를 주도적으로 펼쳐온 경험이 풍부한 곳이다.

2010년대 들어서 한중교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복무중심 간부들이 2015년 3월 25일경 서울을 방문,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를 찾았던 적이 있다.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를 통하여 한국의 각계 각 분야 인사들과 함께 더 광범위한 교류와 합작을 전개하여 우의와 유대를 갖고 건설하여 합작의 길을 열어갈 것 이며 2017년 정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필자는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대표로서 협회 활동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새로운 한중민간교류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을 해본다.

                                      글 =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김용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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