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그 허와 실을 짚어본다.(1회)

▲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

우리나라의 경제는 최근 들어 기존의 성장 동력들이었던 반도체, 조선, 해운, 전자 분야에 있어서 중국 변수들에 의해 심각한 침체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미래는 더욱 불확실하고 어려운 악조건들을 헤쳐 나가야만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17년도 어려운 난관을 뚫고 과거에 경험했던 경제성장을 견인할 만한 새로운 미래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정부와 언론, 미래를 준비하는 여러 기관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 1월 6일 정부에서 진행된 “미래성장동력 확보분야 정부업무보고회“를 통해 미래부는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주요 전략중의 하나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뇌과학 및 인공지능 핵심기술 등 지능정보기술을 본격 개발하고, 국가 서비스에 개발된 지능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제조업·의료·교통·스마트홈의 산업영역에서도 지능형 융합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정부의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 부각 시점에 더하여 탄핵소추를 받아 직무정지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책을 읽고 있다고 해서, 방송과 SNS에서도 ‘제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들이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단어가 주는 메가트랜드와 변화에 따른 임팩트를 다소간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몇 가지 단어의 내포하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미래 메가트렌드를 기술이 이끄는 것인가, 시장과 니즈가 이끄는 것인가?

많은 경우에 시장과 고객의 니즈에 의해 솔루션과 기술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때로 기술적인 획기적인 점핑에 의해 시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동력전달 기술이나 전기와 같은 획기적 기술발전, 반도체 기술 등등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제3차 산업혁명인 정보기술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기술혁신이 시장을 곧바로 만들기 보다는 만들어진 기술들이 시장의 테스트와 검증, 그리고 경제성과 시장 타당성을 검증하는 단계에서 취사선택이 이루어질 뿐이다.

이 중에 사장되거나 더디게 시장에 채택되는 신기술들이 즐비하다. 와이브로 기술, 싸이월드, IMT2000, WLL 등이 대표적으로 사라졌고, 3D안경이나 블루투스 기술은 최초의 예상과 달리 시장에서 다른 전개 과정을 거쳐 기술진화가 이루어진 경우이다.

2) 인공지능 기술은 구현의 정도에 따라 연산량도 크게 차이가 나며, 지능 레벨에 따라 초래되는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 이라는 프레임을 구축하게 되면 마치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이 판단하고 의사 결정할 정도의 완전한 인공지능기술이 전부 구현되는 것을 상상하게 되기가 쉽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일자리에 심대한 영향이 있거나 조만간 당연히 수반되어질 사회적 변화에 불안감을 야기하기가 쉽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레벨은 아직 알파고와 같이 제한적 조건에서도 슈퍼컴퓨팅에 의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구현되는 정도이고, 향후 개발되어질 다양한 응용을 생각하면 넘어야할 장벽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단숨에 이러한 난재들을 뛰어넘어 이상적인 인공지능 로봇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리수가 있다.

3) 혁명이라는 용어로 하여금 마치 신기술이 이미 상당한 결과를 만들었고, 사회 경제적 영향을 이미 끼쳤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신기술이 그런 결과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을 뿐이고, 신기술의 수준은 시장과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하여 결국 인간을 위한 길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2회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

4) 이 용어는 기술 지향주의자들이 매료될 수 있는 기술중심적 세계관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편리와 효율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적 혁신들은 때로 악의적 이용자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가령 드론이 구글에서는 원격택배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을 검토중이나, 만약 드론에 택배 물품이 아니라 시한폭탄이나 사생활 감시를 위한 카메라의 용도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5) 우리나라에서는 이 용어가 창조경제와 같이 정책구호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대다수 이 용어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거의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주창자들은 대부분 균형이나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성장 정책이 아니라 과거 자본주의 초기 과정에서 발생했던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성장 정책에 치우친 경우가 많고 패스트 팔로워 전략속에서의 성장 패러다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회 다수의 행복을 배제한 체, 지배자나 자본가들만의 독식과 갑을문화속에 길들여진 강제논리 구조에서 이 용어는 매우 형식적인 매력을 가진다.

6) 만약 이상적인 ‘제4차 산업혁명’의 끝을 생각하면, 인간이 로봇의 지배를 받게 되거나, 단순 반복적인 일자리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어 사회적 문제 봉착하게 되고, 결국 인간다운 행복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결국 대자본가나 지배자들의 야심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될 여지가 크다.

그래서 자칫 기술중심적인 사고체계이고 정책구호성이 강한 이 용어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에 대한 검증이 없이, 여러 가지 불안과 우려사항이 생략되어 사용되면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듯이 슈퍼컴퓨터들이나 지능로봇이 인간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세계를 비약적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혁명이라는 용어를 통해 쓸데없는 상상과 무리한 추측을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사회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작이 가능한 전자개표기나 사설 전자코인 기술과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응용에 대해서 사회적 신뢰가 약하고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큰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 기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제4차 산업혁명’ 담론의 한계와 허실관계를 몇 회에 걸쳐 조명해보고 궁긍적으로 우리실정에 더 적합한 성장동력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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