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광교산 사찰 부지 모습.(사진제공=수원시)

(수원=국제뉴스) 김성대 기자 = 경기 수원시 박물관사업소는 (재)역사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4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광교산 사찰(현 수원 창성사, 구 법성사)부지 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지는 문화재 통합GIS 인트라넷시스템에 수원 상광교동 사지(추정)로 등록되어 있는 부지로 지정되어 있고 조사결과 통일신라~고려시대(12세기 중반 전후)에 조성한 추정 종루(종각)터와 석탑지 등이 확인됐다.

유적은 광교산(光敎山, 582m) 남서쪽 능선사면부에 위치한 사찰 경내의 경작지와 주차장 부지 일부다.

발굴조사결과 유구는 통일신라~고려시대 건물지 3동과 석탑지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사천왕상의 팔부분이 부조된 석탑재를 비롯해 통일신라~고려시대 와전류(평기와·막새·전돌·나발·용두·치미 등), 소량의 고려시대 청자편 및 조선후기의 백자편이 출토됐다.

또 석탑지로 추정되는 유구 내부에서는 석탑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 소탑 1점이 출토됐다.

확인된 유구 및 출토된 유물의 편년과 중심 시기는 12세기(명종)로 판단된다.

3호 건물지는 종각(종루)지로 추정되지만 규모 및 석탑지의 배치방향과 거리 등으로 볼 때 문루터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석탑지는 지대석상면의 치석기법에 차이가 있고 하부에 판축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창건 이후 고려시대에 석재를 재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추정 석탑지 기단석 아래에서 신라시대 이후로 보이는 사천왕상이 부조된 석탑재가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초반에 사찰이 창건되어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기와는 통일신라시대(9세기 전후)의 무문·선조문·직선문 기와가 출토됐고 대체적으로 측면의 와도방향이 밖→안 또는 전면와도로 그은 특징이 있다.

고려시대 평기와는 격자문·어골문·원문·복합문이 주류를 이룬다.

막새류는 일휘문·연화문·초화문·비천문·용문 등으로 제작된 시기는 12세기 중반 전후로 보인다.

전돌(塼)은 용도와 사용처에 따라 크기가 각각 다르게 4종류가 확인된다.

용두(龍頭)는 고려시대 중반 이후의 것으로 보이고 이는 주로 왕실과 관련된 사찰에서 출토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주목된다.

소조로 제작된 나발편이 1점 출토됐고 사찰유적에서 출토되는 치미편은 연질소성과 경질소성의 2가지 종류가 확인됐다.

또 지표상에서 '○○寺'명 기와가 3점이 수습되어 금번 발굴조사지는 사지였음을 알 수 있고 생활용기인 토기류 및 자기류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요사 등 부속건물은 조사지역의 외곽 서편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창성사 혜찬 주지스님이 기증한 유물 모습.(사진제공=수원시)

이 외에도 현 창성사 혜찬 주지스님이 30여년간 기거하며 사찰 경내에서 수습한 '○岳○'명 기와편, 토제 소탑, 연목와, 귀면문 암막새, 기와 태토로 만든 불입상 가사(架裟)편 등으로 보아 조사지역은 격을 갖춘 왕실 관련 사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유적으로 판단된다.

또 출토 유물 중 연목와(서까래막새)·용두·용문암막새·치미편·사천왕상 석탑부재 등을 볼 때 이 유적은 개인발원의 사찰이 아닌 왕실 내지 국가경영의 사찰로 판단되고 경기권역의 폐사지 중에서도 격조 높은 사찰의 하나로 추정된다.

이상의 결과로 보아 본 유적은 국가적인 사찰로 판단되며 광교산권역 사찰유적의 중심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조사의 학술자문회의는 지난 5월19일에 개최했고 지난달 30일에는 문화재청 전문가 검토회의를 개최했다.

자문회의 결과를 토대로 조사단에서는 1~3호 건물지에 대한 보완조사를 실시한 후 수원시와 협의해 금번 조사지역 내 추가 발굴조사 및 사역확인을 위한 종합적인 검토(토지매입 및 시굴조사 등)를 진행, 광교산권역 불교유적 자료를 확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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