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의’ 행보에 일일이 실망과 분노를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당장 내 삶과 내 나라를 위하여 투표장으로 가자.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김정순박사(사진제공=김정순박사)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김정순박사(사진제공=김정순박사)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쏘아 올린 야밤 단일화가 선거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것도 깜깜이 선거가 시작되는 첫날인 3일 전격적인 발표로 충격파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4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 터라 타이밍까지 짜 맞춘거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하기야 후보 사퇴 바로 하루 전 TV 토론 당시 윤석열을 공세 속에 양당정치 체제를 비판, 윤을 뽑으면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거라던 후보 간에 야밤에 이뤄낸 전격 단일화 선언에 파장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은 ‘야합’이라며 맹비난, 국힘은 통합 명분 운운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작 언론 보도로 감지되는 민심은 통합과 거리가 먼 갈등 증폭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당원 탈당 러시에서 보듯, 무엇보다 당선이 되지 않을 후보임을 알면서도 제3지대 구축을 향해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온 안 후보의 지지자 기만행위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마디로, 기만, 야합, 심판, 분노, 환영 등의 갈등 언어로 점철되고 있다. 즉 통합 명분의 단일화가 아이러니하게도 통합과 거리가 먼 단어들로 대별, 압축 되고 있다.

안철수의 단일화 야합(야심한 시간 합의) 세평에 필자까지 갑론을박 덧없는 말 한 줄을 보태는 일은 의미가 없다. 이유는 이번 야밤 단일화를 통해서 그가 어떤 전리품을 얻게 될지, 무엇이 그를 자신의 지지자들까지 기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했는지 진실이 알려진 바 없어 흑막을 모르기 때문이다. ‘야합’이 있기 불과 몇 시간 전 대선 후보 생방송 TV토론회에서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정치가의 표정으로 일관, 노출되지 않았던 깊고 오묘한 안의 속마음을 모르는 터라 감히 그 속 셈법 평가는 의미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득 어떤 명배우보다 더 연기를 잘해 낸 연기 공로는 인정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미 토론 전 마음속은 중대 결심을 세웠음에도 표정을 잘 숨기는 포카 페이스 못지않게 표정 관리를 잘한 실력에 경의는 표해야 할 것 같다. 토론 전 미리 맘을 정하지 않고서야 하늘이 두 조각나도 안 될 것 같던 단일화를 단 몇 시간 만에 이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철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한 길에 대한 평가는 이미 차고 넘친다. 단일화 효과 역시 명분 없는 정치 야합이라는 의구심 속에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이번 단일화 효과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지 진영과 후보에 따른 희망 사항에 따라 다를 뿐 누구도 3월 9일 전에는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난 3일 단일화 발표를 통해, 안철수라는 중도 상징 정치인이 ‘정치가’에서 ‘정치꾼’의 길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이다. 그간 안철수는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철수라는 이름과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선 후보군에서 스스로 철수, 철수의 길을 선택했다. 한마디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셀프 인증을 거행한 셈이다. 안철수를 향해 붙여진 ‘철수의 달인’이라는 조롱 섞인 작명에 소름 돋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실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세평과 관점을 달리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의’ 행보에 일일이 실망과 분노를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럴 가치는 더더욱 없다.

당장 내 삶과 내 나라를 위하여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유권자마다 지지 후보가 다를 수 있어도 정치가를 원하지, 정치꾼을 원하지는 않는 법이다. 단일화 야합 소동에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얘기하지만,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얘기한다”고 한 독일의 개혁 총리로 존경받는 슈뢰더 전 총리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외침과 오버랩 된다.

이미 몇 차례의 대선에서 보듯 단일화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권자는 잘 알고 있다. 승리를 향한 고지 선점이라도 한 듯 호도하는 정당과 언론의 뒷북 보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투표장으로 향하는 민심 역시 오직 능력 있는 리더를 원하기 때문이요, 이는 곧 ‘정치가’를 원하는 그 마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 프로필>

김정순 박사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정치·언론학 박사

현) 경인일보 오피니언 필진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