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이자 화백으로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향해 가는 '조영남'

그림을 그리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조영남 화백. 사진=강도영 기자
그림을 그리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조영남 화백. 사진=강도영 기자

(서울=국제뉴스) 강도영 기자 = 11월 초, 평년보다 빨리 겨울이 들이닥친 날씨에 첫 주말! 릴레이 인터뷰 바톤을 넘겨주셨던, 양수리 빵공장의 김종석 대표님과 함께 가수이자 화백이신 조영남님의 자택을 찾았다.

Q :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

A : 잘 지내고 있다. 그림도 그리다가 기회가 되면 골프하러 간다던가, 지인들한테 연락 오면 영화도 보러 가고, 친구들과 저녁도 먹으면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편안한 노후라고 생각한다.

Q : 노래를 하시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A : 처음엔 노래 부를 때 즐거웠는데,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로 직업이 되니까 노래가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취미를 갖지 않으면 불안해질 것 같았다. ‘뭔가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학교 다니면서 미술반장을 했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가 될 수 있겠다.

Q : 그림을 배우신 적은 있는가?

A : 나는 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 미술반장을 한 것이 전부이다. 70년도에 군대를 갔는데 그곳에서 가수 김민기를 만났다. 그 친구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다녔었는데 그 친구 그림을 보고 ‘그렇게 그리는 것이라면 나는 발로 그리겠다’라고 농담 삼아 말했더니 ‘형님 같은 분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하길래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모 방송 프로그램 중 ‘나를 돌아봐’와 ‘TV는 사랑을 싣고’를 하면서 송해선생님과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내 성적표 비고란에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이숙원)선생님께서 비고란에 미술과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강복선 담임선생님께서도 미술과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때 학교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아마도 미술에 관한 내 어린시절이 경력이라면 경력이다.

Q : 이 그림은 어떤 의도인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에 또다른 표현을 해둔 패러디작품 조영남의 ‘키스’를 보면서)

A : 최근에 내가 이 사람에게 빠졌는데 대단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데 피카소, 모네, 마티스 같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지배할 때 오스트리아에서 화려한 색채와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아름다움을 많이 그렸다. 한때는 이 사람의 그림을 가격으로 매겨보려고들 했는데, 아마도 가격으로 매기기는 힘들것이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보다 더 나갈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 가운데 크림트에 ‘키스’가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누르고 가장 사랑받는 그림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클림트의 ‘키스’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동양의 화투를 추가해서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Q :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밑그림 작업을 먼저 하는가?

A :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머릿속에 있는 걸로 그리는데, 본래의 그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면서 내 생각을 중간중간 섞어가는 방식으로 그리기도 한다.

Q : 민감한 질문이지만 대작 사건의 발단은 어떤 것인가?

A : 처음 발단이 된 것은, 내 조수가 어느 날 무단으로 내 그림을 팔았다. 그 그림을 산 사람이 ‘이게 조영남 그림이냐, 근데 당신이 왜 가지고 있는가?’ 물었더니 ‘내가 그리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인터넷 신문 기자한테 알려지면서 대작 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2016년 대작사건 당시 기사에 나왔던 사진을 패러디하여 그린 작품 'guilty 유죄 2016'. 사진=강도영기자
2016년 대작사건 당시 기사에 나왔던 사진을 패러디하여 그린 작품 'guilty 유죄 2016'. 사진=강도영기자

Q : 대작 사건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현재는 어떤 심경인가.

A : 나름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개 가수였던 나를 국가가 화가로 인정해 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은 힘들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건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참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수를 쓰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내가 죄가 될 수 있나? 라고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시간이 가면 우리나라에서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심에서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나왔고,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다시 검찰에서 또 항고해서 대법에 가서 다시 무죄가 나왔다.

Q : 대작사건 이 후 작품활동은 언제 다시 하게 되었나?

A : 재판을 하는 동안에도 그림을 그렸다. 대작사건이 시작되면서 방송·신문에서는 절단이 났고 어디 나갈 곳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시간이 남아돌아가기 시작해 하는 수 없이 그림에 전념하게 되었다. 내 친구들이 낚시나 등산, 골프에 빠지는 것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에 빠질수가 있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무죄가 확정되면서 지난 6월 양수리에서 ‘빵공장’을 하는 김종석 대표한테 연락이 와서 그림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걸 마치고 현재는 대구 아트페어를 비롯해 몇몇 곳에서 동시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Q : 미술 관련 책도 두권씩이나 쓰셨다던데?

A : 책이라면 한 20권 정도는 쓴 것 같은데 미술에 관련해서는 전공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개인적인 견해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들을 쓴 것이다. 2007년도에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쓰고 2020년에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먼저 쓴 책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두번째는 좀 알아듣기 쉽게 쓰자고 마음먹고 쓴 것이다. 왜냐하면 변호사나 판·검사나 현대미술을 너무 생소하게 느끼고 헤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초등학생 수준의 쉬운 미술원리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Q : 조영남 화백의 기사를 찾아 읽다보니, 의외로 안티팬들이 많던데 본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 내가 유명해서 안티가 많은 것 같다. 안티가 많을수록 유명하다는 뜻이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안티가 따라붙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티가 없으면 나는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안티 팬이 나를 부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자리를 빌어서 안티 팬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Q :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계획은 있나?

A : 12월에 20일경부터 남산소재 UH 갤러리에서 대대적인 미술 전시회를 계획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책장에서 몇 권의 책을 주섬주섬 담아주시며 ‘꼭 읽어보는 조건이다!’ 라는 농담을 하셨는데, 사실 이 책을 읽느라 기사를 정리하는데 조금 시간 걸린 점에 대해 조영남 화백님께 죄송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한권 정도는 읽어봐야 조영남 화백님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해서 조금 늦어진 점에 대해 이 글을 빌어 양해 부탁드린다.

이 인터뷰가 릴레이 인터뷰 임을 설명드리고 다음 릴레이 바톤을 부탁드리자, 가수 김세환님을 선뜻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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