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사진-KBS 제공)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사진-KBS 제공) 

경상북도 최북단. 동해안의 보배로운 도시, 경북 울진. 옛말에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라 할 만큼 입성이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강이면 강, 넑을 잃게 하는 울진의 아름다운 자연 앞에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금강소나무 아래에서 선물 같은 일상을 사는 이웃들, 때가 되면 왕피천으로 돌아오는 은어와 그 시절의 소년들. 아버지처럼 변함없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아들이 있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백서른세 번째 여정은 그 모든 마음이 깃들어 더욱 보배로운 곳, 경북 울진으로 떠난다. 

▶ 왕피천 케이블카 ~ 망양정

여정의 첫 걸음으로 ‘울진’하면 떠오르는 명소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왕피천 케이블카를 찾은 김영철. 작년 7월에 생긴 울진의 ‘하늘 길’은 엑스포 공원에서 망양정이 있는 해맞이 공원을 오가며 특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태백산맥 심심유곡의 골짜기를 돌아온 왕피천이 동해의 너른 품에 안기는 풍경이 바로 그것!

해맞이 공원 산책길을 따라 오른 김영철을 반기는 건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 조선의 숙종이 현판을 하사하고 송강 정철이 그 정취를 노래한 아름다운 정자는 동해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지나던 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마음 깊은 곳까지 푸르게 물들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울진 한 바퀴를 시작한다. 

▶ ‘왕의 나무’ 금강소나무 숲 & 아랫마을 사람들 

김영철은 태백산맥으로 둘러싸인 울진의 서쪽으로 향한다. 이곳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붉은 소나무의 대향연이 펼쳐지는데. 조선시대부터 왕실의 보호를 받아 ‘왕의 나무’라고 불리는 금강소나무 숲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목질이 단단하고 뒤틀림이 적어 왕실에서 주로 사용했고 어명이 없으면 벨 수조차 없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금강소나무.

울진 금강소나무 숲은 전국 최대 규모로 200살이 훌쩍 넘은 고목만 8만 여 그루, 천혜의 자연 그대로인 소나무 원시림이다. 배우 김영철, 금강 소나무 숲을 거닐며 세상 풍진에도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금강소나무의 절개를 새삼 느낀다.  

아랫마을로 내려온 김영철은 주민들을 만나 특별한 소나무 디저트(?)를 맛본다. 디저트는 봄에 채취한 송홧가루로 만든 송화밀수와 솔잎 가루를 넣은 솔잎다식. 임금님께서 여름철 몸 보양을 위해 드셨다던 별식이 금강소나무 아랫마을 사람들에겐 일상이란다. 길도 없고 전기도 없던 산 속 오지마을 사람들에게 금강소나무는 보배 같은 존재. 곳간은 비어도 지천에 소나무가 있어 주린 배를 채우고 허기를 달랬단다.

게다가 솔향기는 덤으로 딸려오니, 어떤 별천지가 있어도 금강소나무 아랫마을 사람들에겐 남의 얘기다. 사시사철 푸른 금강소나무 아래 푸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 청정 1급수 왕피천 은어잡이 

금강소나무 아랫마을 앞 냇가를 따라 내려와, 다시 왕피천을 만난 배우 김영철. 강가에서 은어낚시 삼매경인 낚시꾼들을 발견한다. 낙동정맥을 굽이 돌아와 물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청정 1급수 왕피천에 여름이 오면 은어가 돌아온다.

바다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강을 거슬러 오르며 몸을 불린 은어는 여름이 제철. 김영철은 은어 낚시만 50년이라는 울진의 강태공들과 수박 향이 나는 ‘민물고기의 귀족’ 은어를 잡아 본다. 대나무 낚싯대에 옷 기우는 바늘을 호롱불에 달궈 낚싯바늘을 만들어 은어를 잡던 때부터 이들에게 왕피천은 좋은 놀이터란다. 소년에서 아재가 됐지만 여전히 은어를 만나려 여름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 사랑은 기억 아닌 마음으로, 모자(母子)의 회국수

읍내로 들어서 보배 많은 울진의 온갖 산물이 모인다는 바지게 시장을 찾은 김영철은 1978년에 문을 연 회국수 식당을 발견한다. 1대 어머니가 시작한 회국수는 특제 초장으로 맛을 내고 당일 잡은 제철 회를 고명으로 올린 비빔국수로, 지금은 막내아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막내아들은 20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의 여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꿈도, 결혼도 미루고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다는데. 어머니의 기억 속엔 아들의 얼굴도, 이름도 점점 흐릿해져 가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아들의 한 마디에 미소가 번진다. 40년 세월 한결같은 회국수의 맛처럼, 서로를 향한 진득한 사랑은 변치 않는 모자의 모습에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 매화 만화 벽화 마을 & 동네 단짝 어머니들    

울진의 북쪽 여행을 마치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김영철은 80년대를 풍미한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벽화로 그린 마을을 찾았다. 울진이 고향인 이현세 작가의 만화를 통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냈다는데.

걷기만 해도 통으로 만화를 독파할 수 있는 만화책 벽화는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단다. 5년 전, 벽화를 인연으로 명예 마을 주민이 된 벽화 화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을 한복판, 나무 그늘 아래서 모여 노는 어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발걸음이 옮긴 배우 김영철. 마을 한복판의 공터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30원짜리 물건을 팔아도 30만원을 벌 만큼 큰 시장이 섰던 매화 장터였던 것.

이제는 마을이 공유하는 커다란 마당이자 마지막까지 장터를 지킨 어머니들의 놀이터가 되었는데. 자식들 뒷바라지를 마치고 하던 장사도 손을 놓으신 어머니들은 눈만 뜨면 모여 간식 나눠 먹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 바다 위의 아찔한 산책,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 

울진에 와서 푸른 동해를 안 보고 어찌 그냥 가리오! 자석에 이끌리듯 동해바다로 나온 배우 김영철. 걷다, 울진 후포면에 20m 높이에서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국내 최장 길이의 하늘 바닷길을 발견한다.

눈앞에는 하늘과 이어진 것 같은 지평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발아래엔 짙푸른 바다를 두어 마치 하늘을 날며 바다 위를 거니는 아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 김영철은 푸른 바다를 눈과 마음에 담고 다시 길을 떠난다. 

▶ 삼 형제의 인생 박물관이 된 고향 집 

김영철은 해안가의 작은 마을을 걷다 푸근한 시골집을 가꾸고 있는 형제를 만난다. 독특한 건 삼 형제의 이름이 모두 적힌 문패. 삶의 출발점이 된 고향 집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집을 공동으로 소유하기로 뜻을 모았단다.

그 후 삼 형제의 고향집은 가족 박물관이 되었다는데. 유년 사진부터 학창시절 통지표와 온갖 상장까지. 삼 형제의 역사가 방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부모님과 커다란 기둥 같은 큰형마저 곁에 없지만 형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고향 집에 들러 지친 마음을 씻고 또 다시 나아갈 힘을 얻어간단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의 고향 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아버지 그땐 몰랐어요’, 아들 어부의 기다림 

배들이 정박해있는 작은 항구를 지나던 김영철은 막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선장을 만난다. 아버지를 따라 뱃일을 시작해 이제 어엿한 15년차 베테랑 선장인 된 아들. 지금은 혼자 배를 타고 있는데, 함께 배를 타던 아버지는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계신 것. 철없던 시절 부모님 마음고생을 많이도 시켰던 선장은 아버지의 병이 다 본인 탓인 것 같다.

아버지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가족의 생계가 모두 그의 손에 달려있기에 선장은 오늘도 바다로 나간다. 아빠가 되고 나서야 조금은 알 것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왜 그땐 몰랐을까. 푸른 물결을 가르며, 아들은 건강하게 다시 바다로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린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장관인 동해안의 귀한 동네, 경북 울진. 천혜의 자연에 깃들어 사는 고운 이웃들의 이야기는 8월 28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33화 마음이 깃들다 – 경북 울진] 편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