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국에서 만난 실망스런 한국인
② 영어 유학의 길 알고 떠나자
③ 황금알 나이아가라폭포
④ 캐나다 퀘벡을 영국에 빼앗긴 프랑스

허드슨 강 유람선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 쪽으로 가던 중 특이한 비행선이 나타나 셔터를 눌렀다.
허드슨 강 유람선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 쪽으로 가던 중 특이한 비행선이 나타나 셔터를 눌렀다.

(예산=국제뉴스) 이종선 기자 =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상태에서 국제뉴스의 온라인 여행으로 미국사회를 다시 본다.

현재 뉴저지주 펠팍시 부시장(한인 세계최초 5선 시의원 겸임)인 동생의 초청으로, 3년 전 15일 동안 미 동부지역과 접경 국가인 캐나다 탐방기를 매주 금요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미국에서 만난 실망스런 한국인

인천공항에서 14시간동안 1만1102km를 날아 당도한 뉴욕 케네디(JFK)공항, 빌딩숲을 스치며 허드슨 강 해저터널을 지나 뉴저지주 한인타운에 도착하면서 미국체험은 시작됐다.

거리엔 온통 우리말 간판에 오가는 한국인들이 즐비해 도무지 미국 땅이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심 오가는 동포들이 반가워 눈길을 주었지만 누구도 미소로 응대해 주질 않는다. 그래도 같은 민족끼리 이억만리 타국에서 만났는데~, 하지만 바보 같은 생각임을 단박에 알아 차렸다. 이들은 한국에서처럼 별반 다름없이 이곳서 살기 때문이다.

불과 20년여 년 전만 해도 이국땅을 밟아 첫 동포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여기서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한국 어디서 여행 오셨어요?” 정도는 보통 인사치레로 오가는 법인데 그렇지가 않았다.

미 동.서부 교민 200만 시대에 동부지역은 80만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한국인인데 바쁜 일상에 모르는 사람과 한가로이 인사 나눌 시간이 없겠거니 하고 이해했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세운 뉴욕 월가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사이에 두고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세운 뉴욕 월가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사이에 두고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날 승용차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 20여분 거리의 뉴욕 맨해튼 마천루에 들어서며 목이 아플 정도로 하늘이 잘 보이질 않는 빌딩 숲에 묻혔다.
 
시티투어 중 들려온 기쁜 소식은 10여년 전 별세한 백남준 아티스트를 아직도 미국사회가 훌륭한 한국인으로 극찬했고, 그가 죽음을 맞이한 날 뉴욕 컬럼비아대 강의실에서 한 교수가 한국학생을 세워놓고 “자랑스런 한국인에게 모두 박수치자”고 했다니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도 잠시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사라져 ‘그라운드 제로’ 자리에 2012년 완공된 104층 규모(541.3m)의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위용을 드러내자, 테러당시 현장에서 1달러짜리 생수를 팔아 어글리 코리안으로 뉴스위크지 1면 톱을 장식했다는 소식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후 아주 극소수의 일이겠으나 이 곳 동포에게서 겪은 3차례의 수모와 실망감은 쉽게 잊지 못할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뉴저지주 한인이 운영하는 초대형마트 반찬코너에 200여가지의 우리 음식이 진열돼 있다.
뉴저지주 한인이 운영하는 초대형마트 반찬코너에 200여가지의 우리 음식이 진열돼 있다.

첫 번째는 한인이 운영하는 초대형마트에서 일어났다.

규모도 크지만 4∼5갈래로 뻗은 통로에 즐비하게 진열 해 논 우리 농산물과 식품이 엄청났다. 수백여 가지 포장된 눈에 익은 반찬들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표지판이 보이질 않아 여기서 일하는 듯싶은 50대쯤 돼 보이는 직원한테 “화장실이 어디에 있죠?” 하고 물었더니 “체! 나∼원 참 여기 있잖소!” 핀잔하며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자신 때문에 가려 못보고 바로 코앞에서 물어본 나의 실수니 화는 났지만 속으로 삭였다. 

그 다음은 버지니아 한인식당에서다. 우리 소주가 국내보다 5∼6배나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출국 전에 사가지고 온 팩소주 1개를 음식이 나오기 전 살며시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한국인 종업원 3명이 눈을 부릅뜨며 몰려와 생난리를 쳤다. 금방 경찰이 총이라도 들고 나타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마시면 큰일 난다고 호통 쳤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났다. 상냥한 미소로 여기 법이 이러니 이해해 달라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다소 껄끄러운 어조로 “한국인 식당에서 내 것 내가 마시는데도 죄가 되요?”하고 큰소리로 그 집 술을 시켰다가 고스란히 1만8000원을 물었다.

양주만큼 비싸게 마셨지만 그렇다고 고맙다거나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거스름 받고 돌아 나올 때까지 주인의 찌푸린 오만상은 끝내 펴지 않았다.
동포끼리 좀 친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가이드한테 주의를 당부했더니 멀리서 주인과 주고받는 얘기가 나를 책망하듯 비웃는 눈빛이 역력했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동업자에게 부탁한 내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뒤늦게 후회했다.

3번째는 같은 일정으로 버스에 동승한 한국인 관광객 30명과 5일 동안 여행 중 어린 여학생에게서 느낀 실망감이다. 한국 아줌마들은 식사 때마다 국자를 들어 자기 남편보다도 먼저 동석한 사람에게 공동음식을 덜어주는 아량으로 우리 고유의 정겨운 미덕을 발휘했다. 

하지만 유학중인 딸 같은 학생과 우연히 마주 앉으면 자신만 알지 앞에서 누가 먹든 말든 아예 관심도 없다. 완전히 미국식으로 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내 살펴보니 선물을 살 때마다 학생들이 웬 돈이 그리도 많은지 그들 부모가 부럽기만 했다. 영어를 아무리 유창하게 한들 인성교육이 잘못된 유학이라면 부모가 한번쯤 짚고 넘어갈 일이다.

이런 학생들은 혼테크(혼인과 재테크 합성어)로 유학 자체가 1등 신부 감이 되는 걸로 알고 신나게 놀며 즐기다가, 영어도 잘 안되고 취직도 못하면 분명 유학경비 수억을 날리고도 대학원까지 간다고 또 보챌게 뻔하다. 

맨해튼 코리안 타운에서 잠시 동안 길거리 감상 중에 한국인 여학생 둘이 버젓이 담배를 꼬나문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약은 안하는지 궁금했다. 부모는 등골이 휘는 줄도 모르고…

이제는 경제.문화.체육 선진국으로 국력이 신장한 대한민국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본때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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