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입사해 155명 직원과 함께 성장 신화 증인으로

김경남 삼미금속 대표.(사진=오웅근 기자)
김경남 삼미금속 대표.(사진=오웅근 기자)

(창원=국제뉴스) 오웅근 기자= 경남 창원국가산단 내 국내 대표적인 단조회사이자 대형 단조품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삼미금속(주)에서 36년 전 말단사원에서 수장이 된 김경남 대표이사의 성공신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3월 이력서를 든 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 삼미금속의 문을 두드린 새내기 직원이었던 그가 세월의 풍랑을 넘어 이제 155명 직원의 대표이사로 우뚝 선 것이다.

1977년에 창원에 설립돼 올해로써 45년 된 삼미금속이 대형단조품 분야에 선두에 서기까지 성장과 쇠락의 희비곡선을 겪으며 그 어떤 고난과 호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법을 온몸을 익혀 온 그였다.

이르자면 삼미그룹의 무리한 확장으로 97년 연쇄부도의 늪에 빠졌을 때도, 2003년 대주주가 삼호조선으로 변경되고 다음해인 2004년 법정관리 종결이란 딱지를 떼었을 때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리고 지난 2010~2012년, 3년 간 연매출 1.000억이라는 최고의 호황을 누릴 때도 성경 속 요셉처럼 언재 닥칠지 모르는 흉년을 내다보며 마음을 다스렸던 사람이었다. 

김경남 대표는 10년 전 또는 20년 전 그날들을 돌이키며 “부도의 늪에 허우적일 때도 있었지만 한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발주 받은 물량을 맞추느라 전 직원이 신나게 일하기도 했다”며 “이 같은 기복 속에서 함께 했던 대다수의 동료가 퇴사를 하거나 타 회사로 이적을 해 문득 그립고 또 아쉽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그의 인간됨과 성실함의 열매였을까? 지난 2009년 1월 이사로 승진한 데 이어 2012년 11월 상무로 승진, 그리고 최근 2월엔 삼미금속 대표이사로서 155명 직원의 수장이 됐다.

순간, 그 어떤 성취감 또는 영광스런 감회를 맛보기도 했으나 잠시였다. 최근 국내, 외 경제 환경이 그러하듯 예전 같지 않은 난항 속에서 무거운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늘 함께 해 오던 듬직한 직원들이 곁을 지켜주고 고달픈 일상 속에도 묵묵히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원들이 있기에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늘 동료 또는 맏형처럼 여기며 함께 해 온 직원들이 대표이사로서 부득이 악역을 연출해야 하는 자신을 어떻게 용인하고 이해해 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김경남 대표의 또 다른 고민은 2만8000평이 넘는 삼미금속의 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따라서 사내 유휴부지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에 대해 창원시와도 수차례 논의했으나 아직은 정답을 찾지 못했다. 또 위기에 처한 회사의 안착을 위해 돌파구를 찾는 일이기에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김경남 삼미금속(주) 대표는 “저를 삼미금속 대표이사이기 이전에 155명의 큰 형님으로 생각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회사가 힘든 이 시기에 서로 부대끼고. 토론하며, 부서 간 현장 간 건전한 경쟁력을 키우며, 한 가족같이 하나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말했다.

(사진제공=삼미금속) 삼미금속 로고가 있는 출입구 전경.
(사진제공=삼미금속) 삼미금속 로고가 있는 출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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