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70대 자산가 박씨와 H은행 前 직원인 이씨의 입양신고서 사본 (사진=박씨 유족 제공)

(서울=국제뉴스) 박소라 기자 = H은행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70대 고객인 박모(여)씨의 양자(養子)로 등록돼 사망 후 수십억원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으면서 유족과의 갈등이 7년째 이어지고 있다.

27일 박씨의 유족에 따르면 2009년 1월 8일 부산에 있는 H은행의 한 지점에서 근무하던 이모(당시 50세)씨는 수영구청에 입양신고서를 제출해 자산관리 고객인 故 박씨의 양자가 됐다. 이씨의 직장동료와 고인의 가사도우미가 증인으로 나섰다.

평소 뇌 손상으로 환각 증상을 보이는 섬망증을 앓았던 故 박씨는 이씨가 양자로 등록된 뒤 6개월여 만인 2009년 7월 26일 건강 악화로 숨을 거뒀으며, 이씨는 고인이 사망한 다음 날인 27일부터 4일간 박씨 명의의 계좌에서 14억여 원을 인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사망하고 뒤늦게 이씨가 양자로 등록된 사실을 알게 된 유족은 2009년 9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과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3년 9월 원심에서 패소한 유족은 연이어 항소와 상고를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입양신고서가 위조됐거나 故 박씨가 입양할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입양신고 당시 故 박씨의 주민등록증 사본으로 수영구청 담당 공무원을 통해 신고서의 법적 기재사항인 '등록기준지'와 '본'을 알아낸 뒤 신고서에 기재해 양자로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담당 공무원이 故 박씨의 '등록기준지'와 '본'을 이씨에게 알려준 것은 반(反)사회질서 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법원은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규칙(제44조 제1·2항)'을 근거로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현행법에 의하면 신고할 때 등록기준지가 없으면 신고자 주소지의 시·읍·면 장(長)이 서류를 처리해야 하며, 심사에 필요한 등록사항별 증명서 등의 자료를 신고자로부터 받거나 전산 정보처리조직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법에서 규정하는 사유가 아닌 다른 사유로 등록전산정보자료를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료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6항).

또한 대리인이 신청할 땐 당사자나 그의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등의 위임장과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19조).

유족의 변호를 맡은 이종균 변호사는 "故 박씨는 입양신고를 위한 위임장과 신청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며 "공무원이 전산시스템을 통해 '등록기준지'와 '본'을 확인하고, 구두(口頭)로 이씨에게 알려줬기 때문에 주민등록증만으로 서류가 수리된 것은 무효"라고 말했다.

또 유족은 입양신고서에 날인된 한글도장은 2008년 중순 전에 분실된 것이며, 기명(記名)은 뇌졸중 병력으로 손 떨림 증상이 있던 고인의 필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또렷한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법원은 "故 박씨는 2009년 3월 11일 H은행 특정금전신탁 계좌에서 이자를 인출할 때 분실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도장을 소지하고 있었다"며 "필적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유사한 점이 있고, 감정 결과 고인의 글씨체와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와 이를 배척할 근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故 박씨 남동생의 아내인 백모(52)씨는 "피고인 이씨에게만 유리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며 "억울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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