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브랜드와 제품명에 '모호한' 외래어 난무

▲ 슈에무라 '라끄 슈프림'의 광고사진에는 '틴트 라커', '오일 인 워터 포뮬러', '어플리케이터' 등 의미가 모호한 외래어가 난무해 있다. (사진=롯데닷컴 홈페이지 캡처)

(서울=국제뉴스) 국윤진 기자 = 직장인 K씨(26)는 외출 전 '시크릿 리페어 컨센트레이트'를 바르고 '스테이지 퍼포머 인스턴트 글로우 이미디엇 래디언스 스킨 퍼펙팅 크림'으로 피부 결을 매끈하게 표현한다.

'레쉬 빌더'로 속눈썹에 영양을 공급해주고 입술은 '라끄 슈프림'으로 마무리하면 끝. K씨는 지금 뭘 한 것일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외래어들은 모두 화장품이다. 이처럼 화장품 제품명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래어로 인해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9일 일본의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shu uemura)'는 지난 20일 선보인 색조화장품 '라끄 슈프림'에 대해 '최초의 틴트 라커', '오일 인 워터 포뮬러', '특별히 디자인된 어플리케이터"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제품은 발색과 지속력을 높인 입술용 화장품이지만, 외래어들이 난무해 어떤 뜻인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제품 효과나 특징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장품 업계 내 외래어 사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슈에무라 관계자는 "외국에서 개발되는 제품은 이름을 바꾸기 애매하다"며 "불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해외 업계를 차치하더라도, 국내 유명 화장품 회사들 역시 제품에 한글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아이오페의 '어반 에이징™ 코렉터'(왼쪽)와 숨37도의 '스킨 리페어 컨센트레이트'. (사진=해당 홈페이지 캡처)

아모레퍼시픽 산하 브랜드 '아이오페(IOPE)'는 기초 제품명으로 '바이오 에센스 인텐시브 컨디셔닝', '바이오 레티놀' 외에 '어반 에이징™ 코렉터' 등 읽기 어려운 기호까지 넣었다.

국내 화장품 업계 2위 LG생활건강도 마찬가지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이라는 순우리말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한 '숨37도'는 한글 브랜드 명칭과는 다르게 '시크릿 리페어 컨센트레이트', '스킨 세이버 멜팅 클렌징 밤' 등 외래어를 제품명으로 많이 쓰고 있다.

이에 대해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모든 브랜드가 다 그렇다"며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성분명 자체가 영어로 돼 있는 게 많아서 한글을 사용하면 제품 특성을 설명할 때 제약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밖에 '미샤(MISSHA)'의 '타임 레볼루션 이모탈 유스 스킨리부터',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앰플', '수퍼 아쿠아 울트라 워터 풀 세럼 인 오일' 등은 전체 이름을 다 발음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의미조차 모호한 이름이 많다 보니 길고 복잡한 외래어 대신 짧고 의미가 명료한 한글 애칭을 만들어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화장품 제조업체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의 기초화장품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 투(Advanced Night Repair Synchronized Recovery Complex II)'는 한국에서 긴 영어 이름 대신 '갈색병'이라는 한글 애칭이 붙으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업계는 줄임말 표기가 판매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에스티 로더의 갈색병이 소비자 사이에서 회자되자 국내 화장품 업계에도 긴 이름 대신 짧은 별칭을 짓는 경향이 생겼다.

'라네즈(LANEIGE)'는 색조화장품 '워터 드롭 틴트(Water Drop Tint)'에 '물방울 틴트'라는 한글 애칭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 29일 아이소이의 '불가리안 로즈 블레미쉬 케어 세럼'은 '지우개 세럼'으로 광고되고 있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또한 중소화장품회사 '아이소이(isoi)'는 기초화장품 '불가리안 로즈 블레미쉬 케어 세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지우개 세럼'으로 판매하고 있다.

영어 명칭과 더불어 한글 애칭을 따로 만들면 소비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업계는 설명하고 있지만, 애초부터 한글을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이에 대해 아이소이 관계자는 "제품명에 영어와 한글을 혼용하면 어감이 이상하다"고 해명했다.

화장품법 제12조에 따르면 명칭, 성분 등은 다른 문자 또는 문장보다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해야 하며, 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ㆍ표시해야 한다. 단 한자나 외국어를 함께 기재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정책과 관계자는 "화장품 외래어 표기는 마케팅 차원"이라며 "외래어가 남발되긴 하지만, 별다른 건의사항이 들어오지 않아 아직 규제 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무분별한 외래어 표기로 원산지를 오인하게 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등 필요하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에스티 로더의 갈색병이 소비자들에게 훨씬 더 각인됐듯이 쉽고 명확한 한글 제품명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화장품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화장품 제품 이름에 순우리말을 도입하면 한글 자체가 브랜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