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것과 삶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우울증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2014년 키워드는 '안전불감증'과 '인재(人災)'였다. 산업 전반에 뿌리내린 안전불감증은 인재를 낳고, 결국 범국민적인 '집단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침몰, 고양터미널 화재, 장성요양원 화재, 판교 환풍구 붕괴, 담양 펜션 화재 등 참담하리만큼 참혹한 참사들로 얼룩진 대한민국은 씁쓸한 연말을 맞고 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인재 방지와 불가피한 재난 대비를 위한 구조적인 시스템 변화가 논의되면서 오히려 올해는 사회적 기반을 다지는 '전환기'가 됐다.

31일 뉴시스헬스가 만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한화 약 3285만원) 시대 개막을 앞둔 한국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돌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체질환을 지니면 몸이 아프니까 제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찾지만, 정신질환 환자는 대체로 음지에 있어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번에 대형 사건ㆍ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정신적 상처를 뜻하는 '트라우마(trauma)'가 쟁점이 됐고, 제도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해 먹고살 만할 때 정신의학이 활성화된 미국이 2001년 9ㆍ11테러를 겪은 뒤 정신의학을 발달시킨 상황과 비슷하죠."

참사의 후유증은 당사자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건ㆍ사고가 발생한 원인부터 결과까지 사회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단발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대책이어야 한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 주(州) 뉴타운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나섰고, 전문가팀이 꾸려져 애도하며 치료해줬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도 그 노력이 계속되고 있죠. 사건ㆍ사고가 발생하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체계적인 치료로 끝까지 도와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국가적인 재난뿐 아니라 개인적인 상처나 선천적인 요인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구도 많다. 올바른 이해로 편견 없는 시각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질환은 우리나라에서 3명 중 1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합니다. 근데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는 문화가 있죠. 그럼 환자들은 집에만 있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혹여나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가 되면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죠. 상담과 치료를 받고 나면 오히려 사회적 기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생각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죠."

기분이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질적으로 다르다. 혼동할 경우 조현병(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증이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린 것처럼 생활이 잘 안 돌아가는 게 우울증입니다. 기분이 우울한 건 우울증의 한 증상이고, 이외에 밥맛이 없거나 불면증이 나타나는 등 전체적으로 삶의 균형이 무너져요. 우울증은 사이클이 있는데, 지속해서 기분이 우울했다가 괜찮아지기를 반복합니다. 근데 우울한 걸 잘 못 느끼기 때문에 잠을 못 잤거나 몸이 허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착각하죠. 그래서 정신질환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겁니다."

전홍진 교수는 정신증으로 인한 심각한 국가적 재난으로 '자살(自殺)'을 꼽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한국의 자살률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1만5000명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8만여 명의 주변인들도 덩달아 고통을 받죠. 자살과 관련된 게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아동 학대와 성추행 등을 근절해야 합니다. 직장생활이 힘들어 자살하진 않잖아요? 수십 명의 진료환자를 대상으로 자살기도 이유를 물었더니 ▲기억 안 난다 ▲밑에서 누가 부르더라 ▲잘 모르겠다 순으로 답하더라고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지속해서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논문 발표로 자살률 하락에도 힘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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