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보훈청 단체협력팀장 조윤희

▲ 부산보훈청 단체협력팀장 조윤희

올해로 4.19혁명이 60주년을 맞았다. 해마다 4월이 되면 4.19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려 하나, 그 숭고한 희생과 의미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부산 민주공원 4.19혁명희생자영령봉안소에서 매월 참배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6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로 시작한다.

헌법에도 나오듯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신을 3.1정신과 4.19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기억하고자 하는 정신이자 나라의 근간인 4.19정신이 있게 한 4.19혁명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에서 일어났던 대중시위 조작과 부정선거로 인해 일어났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는 선거 감시원을 투표소에서 쫓아내고 득표 조작과 투표함 교체 등으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건이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4월 11일 마산시에서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가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 다음날, 마산상고 1학년이었던 김주열 열사가 눈에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채로 발견돼 국민의 분노가 거세졌고 4월 19일 총궐기해 결국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게 된다.

이러한 4.19혁명은 이승만 정부시기에 일어난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이자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의 독립혁명과 함께 4대 시민혁명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실제, 4·19 관련 기록물이 2017년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는 결실을 맺었으나, 안타깝게도 유네스코가 내부 제도 개선 등을 사유로 등재심사를 중단해 4·19혁명 기록물의 신청절차가 멈춰 서 있다.

4·19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조속히 등재되기를 바래 본다.

4.19혁명의 최종 발표된 사상자는 183명, 부상자는 6259명에 달한다. 4월 19일 피의 화요일에 기억되는 희생자 외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셀 수 없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있었다.   

이러한 숨은 노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활했다. 1979년 부마항쟁으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2016년에는 촛불집회로 되살아 났다.
이처럼 4.19민주이념은 시대마다 되살아나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국가위기 상황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나, 지역, 세대, 계층, 성별을 떠나 국민 모두가 하나 되는 4.19정신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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