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회일반
(기고) 정연철의 역사 속의 대한민국 재발견-3백제인의 빛나는 손길
박종진 기자  |  pjj27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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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24  23: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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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철 호담정책연구소 소장.(국제뉴스DB)

작년 4월 30일 현존하는 최고이자 최대의 석탑인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준공식이 있었다. 무려 20년에 걸친 해체 및 보수 작업을 통해 마무리한 일이었다.

백제 무왕(600~641) 시기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미륵사지 석탑은 무왕과 혼인한 왕비가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석탑의 해체가 완료될 무렵인 2009년 사찰 건립시기를 알려주는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 사리봉영기에 의하면 미륵사를 창건한 인물이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자 백제 왕후이고, 그 시기는 639년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리봉영기의 기록을 고려하여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인 '서동요(薯童謠)'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서동요 문제는 달리 논하더라도 639년에 세워진 석탑이 2020년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백제인의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더불어 3국의 한 축이었으나,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가장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였다. 부여족 계통인 백제는 현재의 서울 지역인 한성(漢城)도읍기(BC18~475년)로 시작하여 웅진(熊津)도읍기(475~538년)를 거쳐 사비(泗沘)도읍기(538~660년)에 이르는 국가로 두 차례의 천도를 하면서 개성있는 문화를 창출하였다.

그 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사비도읍 시기의 작품이다.

이 석탑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탑이며, 동시에 가장 큰 규모의 탑이기도 한다. 양식의 측면에서는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초가 되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 기념비적인 석탑이라고 한다. 특히 석탑 내부 심초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통해 백제시대의 사리봉안 방식이나 탑 건립에 따른 의식, 발원자와 발원 동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 (사진제공=호담정책연구소) 익산 미륵사지 석탑(출처 : 네이버)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경주 불국사 내에 있는 석가탑을 바라보자.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說法塔)의 준말이다. 그 제작시기가 742년으로 이미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석가탑의 제작자는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이라고 알려져 있다. 직선미와 균형감을 갖춘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가탑의 제작자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백제 출신의 석공인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을 비롯하여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의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석가탑은 백제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다음으로 1953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칠지도를 보자.

칠지도는 1873년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의 대궁사(大宮司)인 칸 마사토모(菅政友)가 칼날에 새교진 명문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칼의 양면에는 60여자의 명문이 금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에 대한 해석에서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 칼은 백제가 제작하여 제후왕인 왜왕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설이 상대적으로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백제인의 빛나는 손길은 여러 곳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금동대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kg의 대형 향로로 중국에서 유행했던 박산향로와는 다르게 산들이 입체적이며 세부의 동물과 인물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향로는 당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의식을 공예기술 및 미술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품이다.

여기에다 2014년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석실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신발은 길이가 약 32cm로 왼쪽 신발 발등에는 용머리 장식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문양을 새겨 놓았다.

백제, 고 시대 3국 중 가장 먼저 멸망했지만, 백제인의 빛나는 손길은 여러 곳에서 훌륭한 예술품을 남겼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백제인이 머물었던 지역의 땅 속에선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잠자고 있을 런지 모른다.

더하여 일본에 의해 강점되었던 시기에 반출되었을 백제인의 예술품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종진 기자 | 2020-01-24 23: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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