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터문학상 초대석 이종식 시인

가을바람 따라나선 길

촉촉한 기운이 배인 선성한 아침 바람이

한적한 호반을 쓸고 다니는가 싶더니

내 마음까지 쓸어내린다

 

잊고 살자고 생각 말자고

비워버리지 말자고 지워버리자고

몽실몽실 비어 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끝없이 던져 보지만

비울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것은

깊게 파인 심산계곡 처럼 오래 묵어

얼마나 깊이 파고 들었는지

 

진작에 놓았어야 했는데

덜어 냈어야 했는데

비바람에 북풍한설에 얻어 맞고

미치도록 외쳐대곤 했었지

태업에 사슬 억매여서

삶에 굴레에 씌워져서

 

그래도 출렁이는 들판이며 초가지붕에

영글어 오는 가을 곡식들 바라보며

피멍진 몸뚤어리 쓰다듬으며

너덜해진 심신 달래가며

자리에 들곤 했었지

 

울적한 가슴속에는 

켜켜이 쌓인 눈물진 노래 가락이

쉴새업시 바람처럼 꺼억 거린다

어제도 오늘도 이순간에도

들녘 천둥지기 논두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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