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여성 국가지도자

▲ (사진제공=호담정책연구소)정연철 법학박사,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지난해 12월 10일 핀란드에서는 34세의 산나 마린이라는 여성이 총리로 취임하였는데, 이는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측면에서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현재 유럽연합(EU) 28개국 중 5개국이 여성 총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서 이번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의 취임이 놀라운 화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34세라는 젊은 나이는 신선한 충격이라 하겠다.

그러나 필란드에서의 34세 여성 총리 취임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리 대단한 화제가 되지 못한다.

서기 632년, 유럽에서는 중세 초기의 시기인 7세기에 한반도의 신라에서는 제26대 진평왕의 딸이었던 덕만(德曼)공주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선덕여왕으로 647년 세상을 뜰 때까지 16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덕만이 선덕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라의 신분제도였던 골품제에 힘입은 바 크다. 당시로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실적이 있더라도 성골이라는 신분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들 중심으로 이어지는 왕통의 승계에 있어 여성의 설자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선덕여왕의 부친인 진평왕에게는 덕만 공주 이외에는 아들이 없었고, 진평왕의 동생인 백반(伯飯)에게는 아예 자식이 없었으며, 마지막 형제였던 국반(國飯)에게는 승만(勝曼)이라는 4촌 여동생만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 승만 공주가 선덕여왕에 이어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이 된다.

문제는 당시 신리사회에서 성골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은 바로 덕만과 승만 2명 뿐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7세기 당시인 632년에 덕만이라는 여성이 국가지도자인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덕만이라는 여성이 성골 신분이기에 당연히 왕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며, 당시 신라 사회의 최고 귀족인 진골들이 모여 중대한 국사를 논의하는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은 16년간의 재임 기간중 분황사와 황룡사탑을 완성시켰고, 백제와의 치열한 전쟁에서는 김춘추, 김유신 등과 같은 장수를 지휘하여 신라의 국방을 엄정히 하였다.

선덕여왕의 이러한 국정 운영은 단지 성골이라는 신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귀족들을 아우르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다독일 줄 아는 통치 능력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이나 인권문제를 요란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우리나라의 여성에 대한 문호는 놀랍게 열려 있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한 국가는 뉴질랜드로 그 시기는 1893년이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1918년 국민대표법에 의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했다가 1928년이 되어서야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참정권을 부여하였다.

이외에도 미국은 1920년, 프랑스는 1946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여성의 참정권에 인색했던 중동지역에서는 쿠웨이트가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2015년에 와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  이후 최초로 실시되었던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에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투표에 참여하였으므로 현대사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참정권의 차별은 없었다고 하겠다.

필자는 동일한 사건이나 사고에 있어서도 외국의 사례에 대하여는 높은 평가를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사례에 대하여는 평가 절하하는 부분들에 대하여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자는 취지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자 이 칼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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