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리안 코바체프 상임지휘자

(대구=국제뉴스) 백운용 기자 = 화려한 편성과 압도적 음향을 자랑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대작 ‘레닌그라드’가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 <제461회 정기연주회>에서 펼쳐진다.

오는 22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리는 이날 공연은 대구콘서트하우스 2019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로서, 줄리안 코바체프 지휘자와 대구시향으로 꽉 채운 오케스트라 단독 무대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는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략과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황폐해진 레닌그라드에 관한 음악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일생 15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1926년 스무 살의 나이로 생애 첫 교향곡을 발표한 그는 ‘소련이 낳은 음악 천재’로 일찌감치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소련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교향곡의 창작을 이어왔다.

교향곡 제7번은 그의 교향곡 가운데 75분에 이르는 가장 긴 연주 시간과 호른 8대, 트럼펫과 트롬본 각 6대, 하프 2대 등 가장 큰 편성이다.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만 100명이 넘는다.

1941년 6월 독일군의 소련 침공이 시작되고, 7월 히틀러가 이끄는 대군이 제정 러시아의 수도이자 소련의 제2도시인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해왔다. 레닌그라드는 쇼스타코비치의 고향이기도 했는데, 독일군의 포위로 위기에 처한 레닌그라드의 방위전을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그는 이 무렵 교향곡 제7번을 작곡하였다.

1941년 9월 레닌그라드에서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쓴 이후 12월에 가족과 함께 피신해 머물렀던 쿠이비셰프에서 마지막 악장의 스케치와 오케스트레이션을 마무리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작곡 초기에 “제1악장은 ‘전쟁’, 제2악장은 ‘회상’, 제3악장은 ‘조국의 광야’, 제4악장은 ‘승리’로 이름 붙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제가 곡 해석에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추후 삭제하였다.

한편,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정리한 쇼스타코비치의 육성 기록집인 '증언'에서 작곡자는 이 곡에 대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구상한 작품이다. (중략) 히틀러가 범죄자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스탈린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중략) 스탈린이 이미 파괴해놓았고, 히틀러는 마무리만 하면 되었던 레닌그라드에 관한 음악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곡은 총 4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전쟁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 제1악장이 약 30분에 이르며 곡의 절반 가까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가 ‘유쾌한 일이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에 관한 추억을 회상한 것’이라고 표현한 제2악장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혜에 대한 외경의 마음’이라고 표현한 제3악장이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마치 ‘승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금관악기의 화려한 팡파르와 전 악기의 힘찬 연주 속에 팀파니의 강렬한 두드림으로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다. 전곡을 통해서 당시 레닌그라드의 모습을 커다란 벽화로 마주한 듯한 장대함을 느낄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이 곡은 관현악의 혁명가로 불리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에서 볼법한 거대함과 용암처럼 분출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효과는 상당히 표면적이며, 교향곡의 필수 요소인 긴밀한 구성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교향곡이라기보다 방대한 규모의 모음곡에 가깝다.

곡이 완성된 이듬해인 1942년 3월 5일, 쿠이비셰프 문화궁전 강당에서 사무일 사모수드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관현악단의 연주로 첫 공연이 열렸고, 전국 및 해외로 중계방송되었다. 모스크바 초연은 같은 해 3월 29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역시 사모수드의 지휘로 모스크바 국립극장 관현악단과 모스크바 중앙 방송국 교향악단의 합동 연주로 열렸다.

이 교향곡의 초연이 있을 때마다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인 ‘프라우다’에서는 작품을 극찬하였고, 군의 선전과 사기 진작 및 대외적 국위 선양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곡은 레닌그라드 시에 헌정되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으로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대구시향 줄리안 코바체프 상임지휘자는 “예술이 국가의 선전도구로 전락했던 스탈린 시대에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위태로운 곡예사나 다름없었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작곡가의 갈등과 고뇌가 깊이 새겨져 있다. 과거 ‘레닌그라드’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이 아름다운 도시의 시민들이 공포정치와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모습을 본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7번으로 그 참상을 전하는 동시에 폐허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했다. 그 희망의 불씨를 대구시향의 연주로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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