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BBNews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할 경우 주 52시간제 운용을 탄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정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경쟁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제도지만 시행된 지 얼마 안돼 아직 현장에서 정착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업종만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2일 고용노동부 등 경제부처에 따르면 일본의 1차 수출규제 조치는 비교적 적은 수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한정됐으나,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는 대상으로 예상되는 범위만 1100여개 품목에 달한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제조업체들이 특히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일단 정부는 일본 측 규제 강도를 먼저 파악한 뒤 그에 맞춰 추가 노동정책의 수준을 조절하기로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우리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를 사회적 재난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수출 규제 품목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제3국 대체 조달 관련 테스트 등의 관련 연구 및 연구지원 등 필수인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연장근로란 자연재해나 사회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경우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주 최대 52시간을 넘어도 3개월간 기업에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 제도다.

현행 연장근로는 주당 12시간이 한도인데, 특별연장근로를 인가 받으면 여기에 10~20시간을 더해도 괜찮다. 기업이 노동자 동의를 얻어 지방고용노동청에 신청하면 사흘 안에 인가 여부가 나온다. 반복 신청과 사후 승인도 가능하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가재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대형산불이나 메르스사태 등 중대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쓰는 제도를 꺼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기업들은 주 52시간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R&D대체조달 인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고용부가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적용되는 유연근로제 일종인 재량근로제 가이드라인을 지난달 31일 내놓으며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이라는 점을 밝힌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노렸다.

수출규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기업들이 주 52시간제에 묶여 있으면 곤란하므로 재량근로제라도 사용해야 하는 시점인데, 불명확한 규정으로 인해 제도 활용이 어려우므로 신속히 가이드를 제공해 기업들을 독려한다는 취지였다.

고용부는 일본 측 규제가 발표된 직후 특별연장근로 대상을 넓히는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실제 이재갑 장관은 간담회에서 "우리나라가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다면 제외된 물질 중에서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이런 물질이 또 있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거나 추가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풀기에는 노동자 권익과 안전이 저해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노동계 반발도 큰 상황이다.

양대노총은 정부의 1차 대책 발표에 대해 "경제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장시간 노동으로 풀려고 한다"고 일제히 비판한 바 있다.

게다가 특별연장근로 대상을 현행 에칭가스리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서 어디까지 늘릴지도 판단하기 힘들다. 대상 품목을 지나치게 넓게 설정할 경우 시행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아베 정권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해 1000개 넘는 품목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에 나서면 한국 전체 노동자에게 특별연장노동을 강제하겠다는 얘기인가"라고 꼬집었다.

법 해석에도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과연 '사회재난'으로 볼 수 있냐는 지적을 노동계에서 내놓을 경우 정부도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던 만큼 확신 있게 설득하기가 어렵다.

또 대기업이 핵심 소재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고 해외 수입선에 의존해 온 문제를 꼬집는다면 이 역시도 대응하기가 난처하다. 정부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 노동 관련 규제를 푸는 것으로 손쉽게 넘어가려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일본의 조치가 나오면 해당 품목 리스트를 확인한 뒤, 품목별 지원 필요성 등 경중을 따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르면 다음 주에 범정부 차원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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