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안승희 기자

나보단 남을 배려하는 삶 마디마디 노래에 혼을 담아 부르는 영혼의 목소리

'안동역에서''보릿고개'는 가수 진성의 인생을 노래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

(서울=국제뉴스)안승희 기자=대국민 가요 '안동역에서'는 중장년층의 가슴 한켠 묻어두었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소환시키며 한국인이라면 안 불러본 사람이 없다는 불멸의 애창곡이다.

애국가까지는 몰라도 '안동역에서'는 다 안다는 대국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진성의 노래는 대중들이 노래방에 가면 안동역에서 누가 부를지 다툴 정도였다. 대국민 애창곡 '안동역에서' 가수 진성과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그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전국민의 마음을 동요시킨 히트곡의 원동력은 진정성있는 노래말로 대중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안동역에서'

공연 현장에서 악수 세례를 한손한손 다 잡아주고 인증샷까지 아낌없이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여유롭게 교감하며 사람들한테 늘 둘러싸인 모습의 가수 진성.

- '어르신들의 아이돌' 팬들이 너무 많다. '안동역에서' 남자들의 옛사랑의 추억과 로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있으면, '우리가 20살 되면 남산에서 만나자'고 미래지향적인 얘기를 하지않느냐 그런 향수가 내포되어있다. 미래의 꿈이 가사에 있다. 가사의 힘이 크다.

'안동역에서' '보릿고개' 노래로 어머니들한테 쌍가락지를 받았다. '보릿고개'는 어린시절 현장을 격어 보릿고개 가사가 더 와닿는다. "아이야 뛰지마라 배꺼진다." 실제로 이런 소리를 듣고 컸다.

 

熱(열) 받지 마라, 열 내지 마라, 기쁜 悅(열)로 받아들여라.

나보다 남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 높은 가수 진성...노래에 대한 열정과 감성도 풍부해.

- 배려심이 많고 인성과 성품이 타고 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 가요 관계자들이 진성가수는 사람이 좋다는 평가를 한다.

나이 먹으면 잔소리가 많다. 그러나 잔소리는 필요없다. 자기인생 자기가 사는거지 남이 말하면 잔소리가 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다. 나쁜 마음 안먹고 좋게 살려고 한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내가 속상하다.

사람을 이해하는 만큼 노래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감정의 강약조절이 된다. 노래 부르면서도 머릿속에 그 무언가를 그리면서 노래한다. 짧은 시간에는 안되는 것이고 아직도 내 인생의 이야기 페이지는 너무도 많다.

굴곡진 인생...팬들에게 전하는 현재의 마음은 '쉼'

30대 중반까지는 방송 관계자들이 "진성씨는 왜 세상 짊을 다 지고 가는 사람처럼 어둡다"말 해.

- 대중들에게 공개된 인생사 보다 힘들었던 시절 '감성 페이지'가 궁금하다. 젊은 시절에는 우울함도 컸을 것 같다.

10대 때까지 웃음이 없었다. 30대 중반까지 방송피디들이 "진성씨는 왜 세상 짊을 지고 가는 사람처럼 어둡냐. 무게 잡으러 왔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오해를 샀다. 젊을 때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 그 당시에는 우울함이 무게 잡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는 3살 때 양친을 여의고 4살 때 홀로 컸다.)

대부분 가수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 허무함을 많이 느낀다. 젊었을 때는 술이 친구라고 할 만큼 술로 마음을 위로받고 달랬다. 10살 때부터 40년 넘게 나의 외길은 인생 굴곡이 심했다. 술로 의지했고 정신력 또한 나약했다. 예술가들이 고집이나 아집은 있지만 이겨나갈 의지가 같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천재적 예술가와 철학가들도 결국은 그들만의 세계에 살다보니 현실을 이겨나가는 의지보다 결말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 나 또한 젊은 시절에 그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현재는 아프고 난 뒤에 술로 푸는 감정이 아닌 자연 속에서 텃밭을 일구며 많은 것을 느끼고 산다. 시련과 고난은 결국 나의 축복이었다.

- '안동역에서' 히트 후에 림프종 암 소식이 들렸다. 지금은 완치됐는지.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다. 암은 완치가 없다. 대부분 5년이 지나 암이 완치됐다는 건 보험이 재가입 된다는 의미일뿐이다. 췌장암, 림프종암 등은 평생 안고 가야하는 병이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있다. 몸이 어디가 안 좋으면 혹시 재발했나 염려가 된다.특히 목 쪽이 안좋으면 무조건 체크한다.

고달플 수도 아플 수도 있는 자신의 인생사를 너무도 편하게 지내온 사람처럼 애기하는 인생의 내공이 깊은 국민가수 진성. 트로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노래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답하는 가수 진성의 모습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 보다 더 깊은 그 만의 '노래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노래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

- 노래를 네 살, 어린 나이 때부터 불렀다. 가수의 인생이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있었다.

옛날 어린 시절에는 이미자선생님 노래를 듣고 컸다. 어렸을 때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소설만이 내 인생의 테마였다. 어르신들이 고뇌하고 슬퍼하는 정서를 어린 시절 본능적으로 느끼고 살았다. 3살 때, 부모를 잃어 4살 때 부터 객지 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부모님을 알 수 없어 나한테 부모님이 안 계시는구나 느꼈던 것이 7살에서 8살됐을 때다.

어린시절 너무도 애틋한 눈물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터라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면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기러기 아빠'의 가사가 아직도 가슴에 와 닿는다.

자기의 한만을 노래하면 넋두리밖에 안돼...恨(한)과 魂(혼)이 결합되어 부르는 가수가 진짜 가수이다.

- 어린 시절부터 겪은 한이 노래에 어떤 영향을 줬었나.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 40여년 만에 '안동역에서' 최대의 히트곡이 나왔다고 방송관계자들이 얘기한다. 나로서는 부담감이 있다. 녹음하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나는 세션적인 부분이나 노래에서 한과 혼이 조용필에 비해 4분의1 밖에 안 된다. (참 겸손한 사람이다.)

가수들 모두가 한은 다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 자체가 한 많은 세대이며 한이 몸에 배어 있다. 가수는 자신의 한만 노래하면 넋두리밖에 안된다. 한에 혼이 더해져야, 한과 혼이 결합되어야 진짜 오리지널 가수다. 하지만 그런 기질 갖고 있는 가수는 그리 많지는 않다.

굳이 뽑자면 조용필과 최고 미성의 달인 남인수, 1세대 가수 배호, 불세출 가수 나훈아 외에 몇 분 가수가 한 속에 혼을 부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렸을때 꿈이 "내가 노래를 한다면 소리꾼으로서 불러야겠다"

진정으로 대중들의 귀를 열 수 있는 예술가 같은 가수 나와야 해

어렸을때 꿈이 '내가 노래를 한다면 소리꾼으로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훈아, 조용필, 이미자, 이선희는 모두 노래를 잘하고 노래 같고 장난을 안한다. 정박에서 기교를 부린다. 노래에 타고난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다.

노래를 쉽게 접해서는 안된다. 특히 트로트가수들 너무 안타깝다. 동네에서 노래 잘하면 쉽게 데뷔하는게 트로트 무대다.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데뷔하면 데뷔 후에도 발전성이 없다. 트로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영원히 가요사에 남을 음반 나와야 한다. 진정으로 귀를 열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가 같은 가수가 계속 나와야 한다.

 

노래에도 길이 있다. "어떻게 가야 아름답게 가는가"

- 14살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는데 트로트 신동이었나.

요즘 말로 신동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어렸을 때 기억에 남는 무대로 김용임 오은주 같은 신동들이 몇 사람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45년간 꾸준히 음악하는 김용임과 주현미는 "어떻게하면 아름답게 노래의 길을 가는가'를 보여준다.

노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미자 데뷔시대때는 그 당시 속된 말로 '니나노'라는 평가받았지만 길따라 정박으로 FM대로 노래 부르니 사람들이 이미자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빠져든다.

트롯은 정적인 움직임없이 시작해서 정적으로 끝나는 것이지 동적인게 아니다. 예를 들어 남진의 '저푸른 초원위에'는 트로트라기 보다는 그 시절 유행한 엘비스프레슬리 같은 분위기 노래다.

트로트는 선척적으로 타고나야한다. 트로트는 무조건 4분의 4박자다. 일본 엔카와 비슷하지만 엔카는 목에서 만드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 트로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트로트 목으로 부른다. 현철의 꺾는 목은 일부러 굴리는게 아니고 선척적으로 타고난 트로트 목이기 때문이다.

-가수 외에 다른 재능은 없었나.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해서 가수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중간에 노래만해서 먹고 살기 힘든 20대 시절부터는 다른 가수들에게 경쟁력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눈치도 빨라지고 임기응변도 잘 부렸다.

또 다른 쪽에 재능이 있다면 장사였다. 시장에서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출했다. 사람의 시선을 노래 뿐만 아니라 압도할 수 있는 노하우로 언변이 매우 좋았다.

어릴시절 부터 장돌뱅이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했던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진성은 그 누구보다 선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크고 작은 돌들을 밟으며 자갈길이 많았던 인생사 속에서 이제는 깊이와 이해심이 넘치는 아우라가 빛나는 가수로 거듭났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이동하는 차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감흥을 직접 작사·작곡도 한다고 한다.

현재 전국투어 콘서트 중인 진성은 전 좌석 완전 매진 인기를 전국적으로 이어가며, 오는 연말 12월27일 63빌딩에서 디너쇼를 개최, 가수 진성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의 모습도 기대케 한다.

'가수 진성 그의 인생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안동역을 출발한 그의 인생에 보릿고개 길이 아닌 꽃길만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글=안승희 기자/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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